“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기계가 만나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 자신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간은 기술과 더불어 공진화하고 있다.” -진중권 ‘미디어 아트- 예술의 최전선’
이제 ‘미디어(media)’는 우리 일상의 일부분이자 사실상 전부가 됐다.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TV를 켜고 뉴스를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컴퓨터로 업무를 본다. 눈만 뜨면 마주치는 디지털영상으로 된 옥외광고판은 건물옥상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편의점, 최첨단 건물외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미디어가 일상이 되고, 디지털이 아날로그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순간부터 과학기술도 예술 그 자체가 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문화와 예술의 결합, 최첨단 기술과 손잡은 예술=서울역 맞은편, 옛 대우빌딩이 서울스퀘어로 2009년 새 단장하고 문을 열었을 때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이 미디어 아트 실험이다. 세계 최대 LED 외벽으로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가 된 서울 스퀘어는 세계 각지 미디어 아티스트의 캔버스가 되었다. 밤이 되면 불을 밝히는 LED 조명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문화축제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미디어아트전’을 개최했다.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 16인의 미디어아트 작품과 대학생 공모전 수상작을 대구시청 벽면에 설치된 39×25m 대형 스크린에 상영,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최근 미디어 아트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최첨단 기술에 예술이라는 창조적 영역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회화나 전위적 설치 미술에 비해 미디어 아트는 우리에게 친근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과학기술이 창조한 세계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가 자기 반영적인 특성이 강한 현대미술의 총아로 불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미디어 아트는 텔레비전, 비디오, 휴대폰, LED, 레이저 등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해 조각, 회화, 설치미술에 적용되기도 하고 디지털 매체 자체의 비판적 접근이 주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초기 미디어 아트는 출판·인쇄물 활용이나 활자 등 대중매체를 이용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PC) 등장 이후 사실상 미디어 아트는 컴퓨터나 유사 디지털 사이니지 같은 영상장치를 활용하는 예술을 의미하게 됐다.
◇미디어 아트에서 디지털 아트로, 다시 인터랙티브 아트로=디지털 아트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분야 중에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영상기술과 게임 개발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순수예술로 활용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대중적 활용은 오히려 훨씬 높다.
현재 컴퓨터그래픽과 기기를 이용한 특수 시각 효과(SFX:special effects)는 할리우드 등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 주로 쓰이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은 새로운 시각예술이었으나 영화나 방송 등 특수효과로 사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순수미술로 발전하기보다 상업영화 기술로 굳혀지는 추세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고 표현하면서 컴퓨터 그래픽은 영화사에서 신기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과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공통 화두로 갖고 있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는 명확하지만 게임 개발 특성상 집단 창조에 가깝다. 대부분의 PC게임이나 비디오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어낸 고정된 결과물이지만 이용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온라인 게임 등을 예술 장르에 포함시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면서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게임의 사회문화적 지위도 격상되고 있다.
게임도 디지털아트의 대표주자인 특수시각효과와 마찬가지로 상업용 대중문화로 발전하면서 미디어 아트라는 순수 예술분야로서 인정되지는 않는다. 단 예술을 지향하는 순수 창작 게임이나 상호작용성이 강한 게임의 특성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와 공통분모를 가진다. 카네기멜론대학교 등 일부 대학에서는 게임을 인터액티브 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로 분류해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동작인식 감응기기인 ‘키넥트’와 게임기인 엑스박스360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혁명적 예술가 DNA, 기술과 예술의 상호작용=현재 미디어 아트는 다양한 외부 공간 설치미술에 쓰이고 있다. 웹의 탄생으로 많은 양의 디지털 정보를 3차원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매핑이나 인포그래픽 등으로 상업화하는 경우도 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미디어 아트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백남준이라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비디오 아트로 일찌감치 실천해 온 분야다.
백남준은 1948년 로버트 윈너가 제안한 ‘사이버네틱스’에 영감을 받아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예술과 사회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사이버네틱스란 생물과 기계를 결합해 제어하는 시도로 기술과 예술, 기기와 생물, 인간과 유기체 등 여러 조직의 과정과 정보를 종합해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고 관리하려는 연구를 의미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이 개념을 예술에 응용했다.
백남준은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등 영상, 저장매체를 활용한 예술가에서 나아가 공감각적인 공연활동을 펼친 전위적 예술가였다.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였으며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 당시에는 생소한 디지털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철학자였다. 그는 주로 이용했던 텔레비전으로 일방향적 사유가 아니라 양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표현해냈다. 디지털 미디어가 사람들 사이에 침투해 마치 바이러스처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시대를 상상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서체 디자인으로 과학 기술이 가르쳐주지 않은 예술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가 서체 디자인 수업에서 애플의 상징과도 같은 매킨토시 개발 영감을 얻어낸 것처럼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상상하지 못했던 직감과 영감에서 오기도 한다. 애플의 DNA, 창조적 혁명의 DNA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문화와 예술의 만남이라는 미디어 아트는 익숙하지만 낯선 영역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발전은 함께 이루어져왔다. 과학이 예술과 호흡하고 사회를 반영하기도 한다. 캔버스를 떠난 미디어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선을 뛰어넘고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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