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패기,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과학도는 과학자를 거쳐 CEO로 변신했다. 비록 순수 이론을 쫓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로 회사를 경영한다.
10년, 20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기 위해 공부는 필수다. 연구개발에도 직접 참여한다. ‘즐거운 과학자’. 위월드를 이끌고 있는 박찬구 사장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풀어가는 그는 지난 역경도 몸에 좋은 보약이라 여긴다. “과학자가 경제에 눈을 뜨면 인류에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 그가 만든 차량용 위성 안테나는 세계 시장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달리는 차나 선박 안에서도 끊김 없이 TV를 시청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글로벌 강소기업 반열에 올랐다. 수 차례의 역경을 딛고 선 그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1989년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KAIST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외워서 공부하지 않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과 과정이 좋았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발사의 주역인 최순달 교수 밑에서 무선 안테나를 전공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분야였던 무선 안테나를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다. 남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창의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다. 안테나는 특성상 다른 어떤 장치 도움도 필요없는 ‘스탠드 얼론(Stand-alone)’형 장치다. 비록 하나의 장치지만 독자적 풀 시스템이 가능한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공위성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좋은 솔루션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주저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팠다.
대학원 졸업 후 두 곳에서 합격 통지가 날아들었다. 국내 최고의 정부출연연구소로 불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국방과학연구소(ADD)였다. ETRI를 택했다. 과학자가 꿈이었지만, 창업에 대한 갈망도 가슴 한 켠에 담아둔 터라 연구를 하면서 창업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능동 안테나 개발 분야에서 시스템 구현과 관련된 연구를 맡았다. 하지만, 당초 생각과 달리 연구소에서 미래 비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프로젝트베이스시스템(PBS)으로 인해 연구 분위기가 극도로 삭막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싶었지만, 팀에서 막내라는 위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2000년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했다. 그동안 모아둔 전 재산 1억원을 회사를 설립하는데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통장 잔고는 창업 후 4개월 만에 700만원으로 확 줄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안테나를 만들 수 있는 업체에 기술을 팔았다. 로열티를 받기로 했지만, 관련 회사 부도로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첫 위기였다. 그 즈음이었다. 국내 위성방송 서비스 업체 스카이라이프로부터 제품을 팔 수 있는 인증을 받게 됐다. 쓰러져가던 회사는 불과 두 달만에 1000대의 안테나를 팔면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때마침 기술보증기금로부터 6억원의 보증금도 받게 됐다.
이때다 싶었다. 미국 시장에 바로 출사표를 던졌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보다는 드넓은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미국 유명 안테나 회사인 모토셋과 첫 비밀유지협약(NDA)을 맺었다. 당시 만들어놓은 제품은 없었지만, 위월드 기술력을 믿고 전격적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첫 제품인 차량용 안테나는 계약 체결 후 1년 반 만에 세상에 나왔다. 당시 만들어진 샘플 50개는 당시 미국 유명 레저용 차량(RV)쇼에서 빅히트를 쳤다. 바이어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프리오더만 3000개가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자금이 크게 부족했다. 설상가상으로 모토셋이 위월드에 전해주라고 한 생산 자금을 한국의 브로커가 중간에서 가로채 사라졌다. 끝내 제품 생산은 이뤄지지 못했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수출 판로는 유럽에서 터졌다. 위월드 기술력을 지켜본 미국 모니터 전문회사인 카모스가 유럽형 안테나를 팔겠다며 제품 개발을 요청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 해 미국과 유럽에서만 1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그 이듬해도 유럽에서 20억원어치의 제품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됐다. 위월드가 자체 힘으로 진출한 터키 시장에 카모스가 재고 제품을 싼 값에 팔면서 시장이 엉망이 돼 버렸다. 미국 시장에 재진출하려 했지만, HD 방송시대가 열리면서 기존에 개발한 안테나 제품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후 3년간 슬럼프에 빠졌다.
박 사장의 리더십이 위기 속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주저앉지 않고 정면 승부수를 띄웠다. 영업력과 마케팅을 강화하고, 철저하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자신도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사이 터키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관광산업이 발전한 터키에서 주된 교통수단인 버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제품 영향력도 커져 갔다. 회사 전체 매출액의 30%를 차지할 만큼 터키 시장은 이제 안정 궤도에 올랐다. 유럽과 미국 시장도 점차 안정화됐다. 세계 25개국으로 제품이 팔려나갔다. 차량용 이동 위성통신 안테나는 지금껏 세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유로존의 경제 위기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이 회사만큼은 예외다.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매출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는 위월드 제품과 기술력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 사장은 매주 금요일이면 모교인 KAIST를 찾는다. 외국 유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롭게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후배들을 위해 인생 상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장기인 통기타 실력을 발휘해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함께 보고, 레크리에이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설날과 추석 명절도 예외는 아니다.
박 사장의 최근 관심사는 나눔과 배려의 문화다. 아프리카 우간다 어린이들을 후원한 지도 꽤 됐다. 언제부터인가 회사 체육대회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모두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데 보탠다. 이제는 그와 친분이 두터운 다른 회사 CEO들도 그와 뜻을 같이 한다.
“이제는 기업인으로서 가치관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현 상황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유지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사회를 내다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거듭나는데 창업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습니다.”
<박찬구 위월드 사장의 성공 키워드>
◇고객과 끊임없이 교감하라
-기업에서 목표를 어떻게 잡는가는 모든 승패를 좌우한다. 추상적인 목표보다 고객과 교감하면서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면 미래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될 일에서 해야 될 일을 선택하라
-우리는 잘 하는 분야만 더 잘하려 한다. 못하는 분야더라도 필요한 일이면 과감히 시도하라. 이것이 혁신의 첫 걸음이다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꼭 필요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자신의 뚜렷한 강점을 먼저 만든 다음 서로의 약점을 줄일 수 있도록 기업간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라. 시장 상황은 누구도 모르며 영원한 것도 없다.
<위월드 현황>
<위월드 매출 추이> 단위 : 억원
<박찬구 사장 약력>
<위월드는 어떤 회사?>
위월드는 무선 인터넷 관련 안테나 및 통신기기 개발 전문 벤처기업이다.
주 사업 분야는 이동체 탑재 위성 추적 안테나, 자동설치형 위성 안테나, 양방향 위성 인터넷 안테나, 스마트 안테나 등이다.
이 회사 강점은 수입 원재료를 전량 국산화해 납기 수요를 3개월 이내로 단기화하고 고객 수요에 맞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사에 비해 20% 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고성능 안테나를 만들 수 있어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위성 안테나 부문(차량·해양용)에서 원천 기술력을 보유,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등록된 특허건수는 12건, 출원 중인 특허도 12건이나 된다. 새로운 시장 요구를 반영한 응용 제품을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전공정 기술 능력(센서활용, 모터제어 기술, 안테나 설계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세계 최소형 위성 추적 안테나는 성능을 인정받아 중국과 동남 아시아·유럽·미국·남미 등에 수출되고 있다.
위월드는 서비스 품질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회사 자체적으로 품질관리팀을 운영하는 한편 아웃소싱 협력업체 개발 제품의 품질을 엄격히 검증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 진출 성과도 뛰어나다. 유럽·터키·인도·미국 등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위월드는 5대륙 25개국에 바이어들을 두고 판로 확대를 추진 중이다.
최근 급속히 늘어나는 무선 인터넷 관련 분야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일부 공정을 자동화했다. 연구개발(R&D)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차량용 및 해양용 위성 안테나 초소형화, 저가화, 고품질을 추구하기 위해 R&D 분야에 연매출 20%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위월드는 3년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론칭이 잘 이뤄지면 나스닥에도 함께 도전할 예정이다. 박찬구 사장은 “벤처기업에 있어 중요한 것은 매출이 아니라 얼마나 견고하게 자기 영역을 주도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라며 “고객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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