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 hanseok.ryu@gmail.com
진정한 모바일 혁명은 서비스에서 비롯된다. 이동통신 네트워크나 기기 보급이 아니라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서비스 활성화가 보다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나 기능을 제공하는 앱이 아니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서비스들 말이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다양하고 유용한 휴대폰서비스들이 대중화되고 있다. NFC 기능이 내장된 휴대폰을 자판기에 가져다 대며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고, 개인 간 금융거래 서비스인 페이팔로 상대방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만으로 손쉽게 송금할 수도 있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이용률은 계속 증가하지만 해외 모바일 서비스의 90% 이상이 국내서는 등장조차 못한 상태다. 고작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거나 무료 문자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모바일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는 형국이다.
해외서 일상화된 편리한 모바일 서비스들을 왜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일까? 절름발이 수준의 모바일 상거래 환경을 꼽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모바일 결제는 공인인증서 확인이나 번거로운 카드번호 입력절차가 없이 간편하게 이뤄진다. 물론 보안 문제가 우려되는 사람은 보다 복잡하고 안전한 결제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적어도 선택권은 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30만원 이상의 결제에는 무조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고 그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할지라도 매번 결제 정보를 입력해야만 한다.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주어지는 선택권도 없다. 더불어 금융 규제로 인해 페이팔 같은 간편하고도 안전한 금융 서비스의 도입도 어려운 상황이다.
진정한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려면 유료 서비스나 상품 판매 등 이른바 ‘돈’이 되는 사업이 번창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이용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상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종 인터넷 규제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공인인증서 강제 규정 등 갈라파고스화된 환경을 고집하고 있다. 그것이 모바일 서비스 발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국내 이용자들은 생활을 윤택하고 다채롭게 하는 무수한 모바일 서비스의 이용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혁신을 꿈꾸는 개발자와 기업 또한 피해자다. 경계가 없는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서 내수용과 수출용을 따로 구분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 방법까지 달리 가져가야 하는 형국이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게 되고,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벤처기업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우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인인증서와 같이 낡은 보안 규정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자율적인 기준을 갖추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보안 책임을 다하지 않아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기업은 반드시 엄격한 처벌을 받고 사후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현재 상황은 불필요한 규제가 많아 서비스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으며, 보안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회적 피해를 끼친 기업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유롭고 건전한 경쟁이 혁신을 불러오고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그리고 진정한 모바일 시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제대로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