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독립 선언 20년이 채 되지 않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둔다. 800대 탱크로 아랍연합군의 5404대 탱크를 제압했다. 그 결과 무려 세 배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됐다. 이스라엘은 아랍세계와 전쟁이 이것으로 종결됐다고 믿었다.
6년 후인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잃어버린 영토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을 급습했다. 그 날은 속죄의 날 ‘욤키퍼’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신성한 날이다. 이스라엘은 준비 없는 상황에서 100시간을 버텼다. 결국 전세가 역전돼 이스라엘이 승리했지만 국방시설이 파괴되고 많은 젊은이들이 숨졌다.
욤키퍼 전쟁으로 경각심을 갖게 된 이스라엘은 군 체제를 정비했다. 이때 히브루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사울 얏찌브(Shaul Yatsiv)와 펠리스 도싼(Felix Dothan)은 군 당국에 젊은 엘리트로 구성한 군사 신기술 연구개발(R&D) 구축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바로 이스라엘 최 정예부대 ‘탈피오트(Talpiot)’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에선 대학 진학만큼 어느 군대의 유닛에 들어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탈피오트는 히브리어로, 성경 아가서의 구절 중에서 ‘성의 탑’을 뜻한다. ‘최고 중의 최고’라는 의미이다.
탈피오트는 과학·물리·수학 등에 특출한 성적을 보인 젊은이를 선발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3년간 히브루대학에서 과학과 컴퓨터공학 등 수업을 듣고 40개월 후 소위 계급으로 6년간 무기산업 R&D에 복무한다. 연 50~60명 선발에 수백명이 지원한다. 이틀 동안, IQ테스트를 포함해 심리학, 사회적 능력 등을 검증 받는다. 고등학교 상위 1~2% 학생만 뽑힌다.
탈피오트의 진면목은 ‘탈피온(탈피오트 졸업자)’이 사회에 나왔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은 벤처와 신기술 산업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다줬다. 이스라엘은 나스닥 거래소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회사를 등록한 나라다. 770만 인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저력이다. 2009년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 회사 63개가 나스닥에 등록됐다. 일본 6개, 영국 5개, 싱가포르 4개, 인도 3개 등 이스라엘에 훨씬 못 미친다. 우리나라도 단 3곳에 불과하다.
나스닥 등록 이스라엘 회사에 탈피온들이 포진했다. 탈피온들이 9년 프로그램을 통해 상당 수준의 기술과 혁신 전략을 배우기 때문이다. 사실 졸업자 중 군대에 남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이스라엘 국방과 국가 경제에 탈피온들이 크게 기여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포브스가 뽑은 100대 기업 중 85곳이 탈피오트 출신들이 모여 만든 NICE 시스템 통화감시장치를 이용한다고 하니 놀랍다. 하버드대 물리학자인 아브라함 로엠, 인기 UCC 사이트인 메타카페(Metacafe) 창시자인 아릭 체저니악,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 공동 창설자인 마리우스 나츠 등 학계와 벤처업계에 수많은 탈피온들이 활약한다.
우리도 탈피오트에서 배워야 한다. 과학인재를 현장으로 보내 이공계를 살리고 군대는 과학국방으로 전환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탈피오트를 모델로 우리 국방에 맞는 첨단 과학인력 양성과 과학국방을 이뤄내야 한다.
이공계 기피가 이렇게 심해선 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 이공계 학생에게 병역특례를 대폭 확대해 중소기업으로, R&D연구소로, 생산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 대신 지금까지 육군 중심인 군대 조직을 해군과 공군 중심으로 재편하고, 병역 수요를 육·해·공군 60만명에서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적어도 절반 수준인 30만명으로 감축하고 그 대신 R&D를 비롯한 국방비를 늘려서 과학국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산업도 살고 국방도 사는 길이다.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digital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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