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그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상당히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든 크로비츠 전 월스트리트저널(WSJ) 발행인은 1일 WSJ 오피니언란에 기고한 `오바마를 위한 스티브 잡스의 조언`이란 칼럼에서 최근 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시사주간 타임의 월터 아이작슨 전 편집장이 쓴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작년초 오바마 대통령 요청으로 이뤄진 단독면담에서 정부의 규제가 경제에 많은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당신은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잡스의 지적은 하이테크 산업이 미국 경제의 성장동력임에도 연방정부의 각종 규제가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실리콘밸리의 정보통신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워싱턴 정가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이다.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이 당면한 기술혁신으로 인한 도전과제들을 설명할 수 있도록 CEO 6-7명과 만찬을 갖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백악관 참모들이 준비과정에 개입하면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지난 2월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존 도어의 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일부 CEO들이 참석한 소규모 만찬이 이뤄졌다.
이 만찬에는 잡스와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 그리고 구글, 시스코, 오라클의 최고 경영진들이 참석했지만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간의 소원한 관계만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잡스는 이 만찬에서 훈련된 고학력 엔지니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 대학을 졸업한 공학도들이 미국에 남아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자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포괄적인 이민개혁안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작슨은 전기에서 "잡스는 이 문제가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했다"면서 "잡스는 `대통령은 정말 똑똑하지만 그게 왜 안되는지 이유만을 계속 설명하려 해 짜증이 났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잡스는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 교육받은 외국인 공학도들이 미국에 체류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실리콘 밸리가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만찬에 참석했던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존 도어는 미국에서 물리학과 공학 학사학위를 받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무조건 영주권을 주자는 제안을 했던 인물.
현재 미국 대학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의 70% 그리고 공학 석사학위를 받는 학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또 1995년 이후 기술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한 창업자의 25% 정도는 외국 태생이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중 절반은 외국인들이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연간 14만명에게만 영주권을 제공하고 있어 업계의 수요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주권을 받는 외국인 가운데 특정국가 국적자가 7%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어 인구가 많은 인도와 중국계는 각각 70년과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에서 첨단기술기업을 창업한 인도계의 비벡 와드후와는 최근 미 의회 증언을 통해 고도로 훈련받은 고학력 근로자들이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 좌절감을 느끼고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미국은 인도와 중국에 뜻밖의 선물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잡스는 어렸을 때 입양되기는 했지만 시리아계 이민자 출신 교수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공부한 외국인 엔지니어들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문화는 어떤 문제에 논리적으로 접근해 최상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반면, 워싱턴 정가는 이민정책에 관해 서로 공방을 벌이고, 이민개혁안 처리가 지연되는게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는 등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혁신을 강조하는 잡스 같은 사람이 워싱턴 정가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고 크로비츠는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