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기술 포맷

 ‘포맷’이 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는 특이한 프로그램들이 생겼다. 경쟁을 시켜서 의류 디자이너를 뽑는 프로그램, 한국 출연자가 나와서 한국말로 진행하는데 뭔가 어색하다. 세트는 케이블TV 채널에서 보여주던 해외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과 똑같다. ‘설마 저걸 다 베낀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국내 방송가에 ‘포맷 수입’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말 개국을 준비하고 있는 채널A, jTBC, TV조선 채널 설명회에서 예외 없이 나온 장면이 있다.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수입해서 쓴 검증된 포맷’이라는 미사여구다. 포맷을 사들여서 방송을 제작하는 것은 이미 시청자에게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 채널사용사업자(PP) 채널에서 해외 프로그램을 방송한 뒤 인기를 끌면 그 포맷을 들여와서 국내에서 제작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포맷’이 뜬다. 이달 초 프랑스 칸에서 열린 ‘국제영상콘텐츠박람회(MIPCOM)2011’에서는 한국에서 온 특이한 포맷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는 양방향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를 발표했다. 프로야구 중계방송에서 실제로 쓰고 있는 ’멀티앵글‘ 서비스를 발표했다. MIPCOM 행사에 참석했던 KISA 관계자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을 실제로 구현해서 들고 나오다니 놀랍다는 반응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포맷이 뭐기에=포맷이란 방송 프로그램 신호처리나 제작방식 형태, 또는 전체적인 구성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사전적 의미에서 제작방식, 프로그램 구성이 포맷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포맷은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광고 포맷, 기술 포맷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방송가에 ‘포맷 시장’이라는 말은 발붙일 데가 없었다. 국내에 인기리에 방영된 TV 프로그램 중 일본 방송 포맷을 베꼈다는 의혹을 증명하는 인터넷 게시물이 올라오곤 하던 시절이다. 이렇게 해외 포맷을 들여와서 가공하는 데 주력하던 국내와 달리 유럽·일본 등지에서는 방송 포맷이 산업으로 발전했다. 네덜란드 ‘엔데몰’은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현재 방송 포맷 시장규모는 14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네덜란드 엔데몰은 가장 성공적인 회사로 꼽힌다. 출연자 1명과 방청객 100명이 퀴즈대결을 펼치는 ‘1:100’ ‘빅 브러더’ 등을 판매했다. 한번 히트한 포맷은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해서 재제작된다. 포맷 하나를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일반적으로 2000달러에서 비싸게는 1만달러다. 제작비를 전혀 안 들이고 아이디어만 내면 되기 때문에 ‘잘 만든 포맷 하나 열 프로그램 안 부럽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최근에는 통신망으로 콘텐츠를 이용하게 되면서 단순한 콘텐츠 포맷이 아니라 연계형 포맷, 광고 포맷 등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술 포맷 시장을 잡아라=퀴즈쇼를 시청하던 4인 가족이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TV에서 문제가 나오면 자신의 스마트폰에 뜨는 번호를 누른다. 화면에는 시청자 선택이 바로바로 집계돼 나온다.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문제를 푸는 퀴즈쇼라는 단순한 스토리 포맷 외에 한 가지 포맷이 더 얹힌다. 스마트폰과 TV가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그 데이터는 방송국에까지 송출돼야 하기 때문에 포맷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양방향 서비스 기술 노하우를 일일이 분석해서 포맷화한다면 앞으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는 손쉽게 기술적인 노하우까지 배울 수 있게 된다. 한국이 3차원(D) 동영상 제작 방식 등 앞선 기술을 포맷화해서 판매한다면 스토리텔링에서 빼앗겼던 포맷 시장 주도권을 잡아갈 수 있다.

 오용수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진흥정책과장은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T커머스 등 양방향 광고 분야에도 포맷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아이디어로 만들어 낸 포맷이 아니라 시장에서 먼저 도입해서 겪는 문제점의 해결 방안도 담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메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연구소(랩) 설립자는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따라 “‘방송(Broadcast)’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미디어가 사라지고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한다는 것.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미국 시청자 48%가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시청한다. 국내 IPTV 가입자 수도 3년 만에 500만명에 육박했다. 분화된 플랫폼에 버금가는 새로운 포맷이 등장할 만한 환경이 갖춰졌다.

 이러한 발상에 따르면 모든 콘텐츠와 기술을 포맷으로 만들어서 파는 게 가능하다. 기술 특허에 로열티를 받듯 노하우에도 값을 매길 수 있게 된다. 앱스토어에 올라 온 애플리케이션 구성도 포맷으로 본다면 이를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애플 앱스토어에 올라 온 ‘서울버스’ 앱 포맷을 해외에 판매할 수도 있다. 머지않아 앱 포맷을 놓고 한바탕 저작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포맷 주도권을 잡으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페이스북은 최근 새로운 광고 포맷을 개발하기 위해 ‘고객 자문위원회(Client Council)’를 만들었다. 새로운 광고 포맷으로 광고 수입을 올리고 이를 판매해서 이중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 다트미디어의 양방향 광고 솔루션도 쿠폰발행, 설문조사, T브로슈어 발행 등 다양한 광고 타기팅 포맷을 개발해서 제공한다. 이는 SK브로드밴드 IPTV에 실제로 쓰이고 있다.

 아이폰4S에 탑재된 음성 인식 기술 ‘시리(Siri)’도 일종의 포맷이다. 사용자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기계가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 일일이 구성해 놓은 포맷으로 볼 수 있다. 각국의 정서와 생활 패턴에 맞는 다양한 개인 비서 포맷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