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전자파 소고(小考)

[ET칼럼] 전자파 소고(小考)

“전화를 받거나 걸 때 대체로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불현듯 생각날 때마다 ‘이어폰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데’라고 되뇌지만 늘 성가셔요.”

 지난 2월 23일, 휴대폰에 쓸 이어폰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노라 볼코우 박사팀이 ‘이동전화 전자기장에 사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내놓은 뒤였다. 뇌가 휴대폰 전자기 복사(방출), 즉 전기와 자기가 흐를 때 생기는 전자기장·전자기에너지·전자파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현상이 암 같은 병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볼코우 박사가 ‘휴대폰을 귀에 대지 않고 이어폰에 연결해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덩달아 뇌리에 ‘이어폰’을 새겼다.

 5월 31일, 귀찮아 움직이지 않던 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휴대폰을 쓰면 뇌종양 같은 일부 암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정확하게는 이동통신에 쓰는 무선 주파수의 전자파를 ‘인체에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그룹(2B: 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으로 지정했다. 2001년 송배전이나 가전제품에 쓰는 극저주파(ELF) 전자파를 ‘2B’로 분류한 지 10년 만이다. 송배전 설비 이격 거리에 따른 암 발생 비율을 두고 여러 다툼이 일어난 전례가 이동통신 쪽에 전이할 것으로 보였다.

 10월 31일, 게으른 나머지 여전히 이어폰을 쓰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어쩜 이리 무심할 수 있을까 싶다. ‘암 유발 걱정’을 남의 일로만 여겨 휴대폰을 계속 귀에 댔다. 그러다 경종을 들었다. 최예용 환경보전시민센터 소장이다. 그는 이날 녹색소비자연대전국연합회 ‘녹색살림포럼’에 나와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왜 (유선) 이어폰을 내장한 제품을 만들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유선 이어폰을 끌어내 쓴 뒤 자동으로 되감아 넣는 제품이다. 무선 헤드셋도 있다고 하나 전자파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려면 유선 이어폰이 낫다. 물론 작고 가벼우며 똑똑한 기능을 갖춘 휴대폰을 만들려면 ‘이어폰 내장’은 뒤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경영 전략상 당연한 선택일 게다. 최 소장은 경영 전략을 꾸짖는 게 아니었다.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 전자파와 암이 막연히 두려운 소비자·시민을 더 적극적으로 품으라는 얘기다.

 정부와 미디어도 이런 질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술과 돈이 충분한데 왜 고압 송전로를 땅에 묻지 않고, 초등학생이 휴대폰을 계속 쓰게 하느냐는 것이다. 듣는 이에 따라 최 소장의 주장이 과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자파 노출·발병 예방 의무나 오염자 부담 원칙까지 훼손할 일은 아니다. 정부·기업·미디어도 마땅한 자기 역할을 겸허히 돌이켜 볼 때다. 언제쯤 이어폰 달린 휴대폰을 살 수 있을까.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