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리 조정길 대표(jungkit01@hanmail.net)
노트북을 덮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강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매일 보는 풍경이건만 새삼스러운 것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한고비를 넘겼다는 마음 때문이다. 13년간 회사 생활을 그만 두고 나올 때는 청년의 열정도, 노년의 유희도 아닌 절박한 심정이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라는 어중간한 위치,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에서 정체성을 찾아 평소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창업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미하기 그지없지만 조금씩 뜻한 바를 이뤄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치열한 IT업계에서 틈새를 찾아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거기에서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중소기업의 CEO들이 똑같이 마음일 것이다.
요즘 3D로 기피되는 IT업계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선망 받는 직업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마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직장 다닐 때 나름대로 많은 연구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 발주기관에 제안했지만, 담당자의 말은 ‘그냥 예전대로 가자’였다. 누구도 가지 않은 미답지에 대한 도전정신은 책에 있는 경구일 뿐 사회는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를 차리고 나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업을 위해 우선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소위 ‘스펙’ 이듯이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많은 스펙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갖춰야 하는 스펙, 그건 바로 열정과 아이디어가 아닌 실적과 규모이다.
제안서를 써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회사 규모와 실적이었다. 아무리 전문적인 업무 지식과 열정, 수행 역량을 얘기해도 담당자는 머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좌절이었다.
어릴 때 귀 아프게 들었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어디 갔으며 슘페터가 말한 ‘혁신’은 누구에게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풍토에서 아이디어와 열정하나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궜다는 다른 나라의 전설같은 얘기는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공공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든 용역평가시 필연적으로 들어가 있는 실적위주의 평가를 개선해야 한다. 실적 위주의 평가에서는 당연히 경험이 많은 중견기업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젊은 기업의 젊은 생각은 묻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의무할당제의 도입이다. 현재도 총사업비가 일정금액 이하인 경우에는 중견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지만, 큰물에서 노는 고기가 더 크게 자라듯이 대규모 사업의 수행경험은 작은 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케 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오히려 규모가 큰 사업이라도 분야별 전문적 특징이 있는 중소기업 여러 곳이 공동참여하여 일을 수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금처럼 일률적인 금액제한이 아니라, 대규모 사업도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사업의 일정비율을 중소기업이 수행할 수 있도록 의무할당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소기업을 만들기 위한 다년간의 계약체결이다. 지금 중소기업은 한해 사업의 수주여부에 회사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한다. 이래서는 하루살이와 무엇이 다른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인력과 자금 흐름을 계획적으로 꾸리기가 어려워 중소기업만의 특징인 특화된 기술을 육성하기가 어렵다. 한해 사업으로 끝나지 않은 연차적 사업인 경우, 다년간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확보토록 하여 중소기업이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가능케 한다면 세계적인 강소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탄생할 것이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한말이 생각난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젊은 중소기업은 항상 배가 고프다. 육체적인 배고픔이 아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고픈 그런 갈망이다. 잡스처럼 회사를 세울 때 품었던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우직하게(foolish) 실현하고 싶어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젊은 생각이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가꾸고 키워가야 한다. 그래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많은 젊은 기업인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이 곧 우리사회의 발전을 견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