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텅 비고, 간판만 남았다. 3개월 전 공장에선 15명 직원이 기계와 씨름하며 자동차 실린더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었다. Y사장은 “변호사 댈 돈도 없는 내가 비싼 변호사로 무장한 원청업체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대구 성서공단에 소재한 중소기업이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진 기막힌 사연을 다룬 언론보도 내용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려면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 도요타 사례처럼 협력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문제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 많은 대기업이 다양한 상생 협력 방안을 내놓아 무척 다행스럽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한 배려와 더불어 제대로 실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동반성장’은 대·중소기업 간 문제만이 아니다. 같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라도 1차 협력사냐, 2차 협력사냐에 따라 문제 강도가 달라진다. 협력업체간 거래에서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도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대구·경북지방중기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과 더불어 납품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간에도 상생협력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동반성장 트라이앵글 실천협약’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협약은 직접 납품거래 관계에 있는 모기업(일을 위탁하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과 협력기업(모기업의 일을 수탁 받아 처리하는 중소기업)들이 핵심축이 돼, 서로 성장·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협력을 한다. 대구·경북지방중기청은 제3의 축으로 참여해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현재까지 총 7차례 협약이 이뤄져 참여 모기업과 거래협력기업 간 원활한 소통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협력업체끼리 알고 지내기 등 사소한 부분부터 현금성결제 확대, 결제기일 단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신뢰와 협력의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는 등 동반성장의 실천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성과’도 기대 이상이다. 협약체결 후 1년이 지나 ‘상생협력’ 사례를 조사한 결과 포항소재 엔지니어링 대기업인 I사는 주 1회 현금으로 결제하고, 협력기업의 노력으로 달성한 원가절감분을 협력기업과 공유하는 한편, 협력업체에 대한 교육훈련 및 경영·혁신활동을 지원하는 등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성주 소재 자동차회사의 1차 협력업체인 중소기업 H사는 협력기업의 납품업무 간소화를 위해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영이 어려운 협력기업에 납품대금을 선지급하는 등 어려운 여건의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뤄진 7회의 협약 중 중소기업 간 협약은 6회인데 반해 대-중소기업간 협약은 1회에 그쳐 대기업 참여가 미흡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반성장은 대기업(모기업)이 갑의 지위에서 시혜를 베푸는 식이거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제스처를 취하는 형식이어서는 안된다.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의 강점을 키우고 단점을 보완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중소기업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적기에 납품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경영혁신을 이뤄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이다.
우리 경제가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통한 건강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손광희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 kwang@smb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