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잡스는 잊고 우리만의 잡스를 찾아라

[ET단상]잡스는 잊고 우리만의 잡스를 찾아라

 김경진 한국EMC 대표 kevin.kim@emc.com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은 애플 마니아뿐 아니라 세계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아쉬움을 주었다. 평범치 않았던 출생과 성장. 치열하게 일하고 성공했지만 또한 여러 번의 실패도 경험한 오뚝이. 불과 물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것 같은 성격. 아름다움과 간결함을 사업화시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천재. 잡스의 명복을 빈다.

 필자에게 잡스는 아직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여러 아름답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었고, 또한 그만큼 실패하기도 했으며, 사업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불같은 성격에 완벽주의자이며, 훌륭한 프레젠터라는 사실 외에는. 창의성, 디자인 능력, 끈기, 완벽주의 성격, 통합력 등 사실 잡스의 수많은 천재성 중에서 무엇이 그를 성공시켰는지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잡스 스토리의 완결판인 애플의 현재 성공은 아마도 그의 천재성과 할로(halo) 효과, 치밀한 마케팅과 유통망 장악, 가격정책, 글로벌 소싱, 그리고 행운의 우연한 작용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창의성과 융합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배워서 성공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잡스의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할 뿐,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 콕 집어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법석은 수년 전 빌 게이츠 열풍을 생각나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참 잘 나갈 때는 많은 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빌 게이츠처럼 창의적 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프트웨어 천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빌 게이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최고 자리에 서 있지 않은 존재다.

 자의적인 판단이나 통념으로, 누가 성공했으니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이야말로 창의성을 말살하는 주범이다. 빌 게이츠를 칭송하고 따라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그와 같은 천재 소프트웨어 사업가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생겨났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잡스의 성공 공식을 따라서 외우면 과연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보다 더 창의적이었고, 더 끈기 있었으며, 더 디자인을 잘 했고, 더 똑똑했고,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성공하거나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진정한 창의성은 결국 남과 다른 것을 먼저 인지하고 행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잡스처럼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기계로 찍어낸 잡스식 창의력은 결국 또 하나의 복제품일 뿐이다. 세상에 마술은 없다. 잡스나 게이츠의 마법이면 성공한다는, 단세포적인 답을 강요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발전과 성공에 가장 큰 적이다. 우리사회의 장점이자 단점인 집단주의 경향, 이성적 평가보다 심정적 지지를 중시하는 문화,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선호하는 성향 등을 파고들며 맞지도 않는 성공의 공식을 세계적 천재들의 명성에 기대어 파는 것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성공은 창의력과 시스템,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과 인내, 땀의 결실이고 또한 거기에는 운도 작용한다. 우리가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교만으로 넘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천재 몇 사람의 성공사례만 들먹이며 우리를 비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우리가 정말 찾아야 할 것, 더 연구해야 할 것, 더 칭송하고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이미 가진 ‘한국판 스티브 잡스’들이다. 세계 3대 주류로 부상하는 한국 자동차 산업과 철강산업, 세계를 제패한 반도체, 가전제품, 조선 및 플랜트 산업,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게 발달한 국내 서비스 산업과 백화점 및 양판점의 서비스, 세계 1위의 국제공항, 떠오르는 글로벌 문화인 K-POP 등, 이 모든 것들은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창의성, 진지함, 노력,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우리 형제자매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잡스를 찾으러 나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