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대학 구조조정과 혁신의 대안은 `칼리지(College)`

 마뜩찮던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최근 호감이 들었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지 말라는 지시다. 보도블록 교체 공사는 연말이 왔음을 실감하는 연례행사다. 좁은 길 불필요한 교통신호등 설치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늘 되풀이하는 예산 낭비다.

 다른 하나는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시행 계획 발표다. 강원, 충북의 도립대로 번질 태세다. 등록금 인하보다 지자체가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대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더 중요하다. 최근 불거진 대학구조조정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는 요 며칠 뒤숭숭하다. 감사원의 대학 등록금 감사결과라는 지진에 교육과학기술부의 부실대학 폐쇄라는 쓰나미를 연거푸 얻어맞았다. 터무니없는 학사운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학들은 자율성을 무시하고 비리집단으로 매도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등록금 인하 압박과 추가 퇴출 공포에 벌벌 떤다.

 이른바 명문대 출신도 취업이 어려운 시절이다. 지역의 이름 없는 대학 출신은 말할 것도 없다. 부실대학뿐만 아니라 지명도 낮은 대학도 구조조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는 그 시점을 앞당겼을 뿐이다. 이왕 할 것, 제대로 해야 한다. 대학엔 고통의 나날이겠지만 대학교육 경쟁력을 높일 기회다.

 대학을 칼리지(College)와 유니버시티(University)로 나눌 수 있다. 칼리지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는 이를 2년제 전문대로, 유니버시티를 4년제 종합대로 분류한다. 외국에선 다르다. 학부만 있으며 칼리지, 대학원 과정까지 있으면 유니버시티다. 칼리지라해도 ‘아이비리그’ 명성에 버금가는 대학이 많다. 스티브 잡스가 중퇴한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칼리지’는 좋은 예다.

 이런 칼리지는 인문학과 기초과학 등 교양 위주로 가르친다. 졸업생들은 전공을 찾아 다른 유니버시티에 편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다. 종합대학만 중시하고 편입을 낮춰보는 우리 풍토에서 이런 칼리지가 등장하기 쉽지 않다. 실무 인력을 양성하는 ‘지역사회(커뮤니티) 칼리지’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자체가 부실 대학을 인수해 커뮤니티 칼리지로 바꿀 수 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만큼 주민에게만 등록금과 지역 내 취업 혜택을 줄 수 있다. 지역 필요성에 의해 양성하는 인력이다. 다른 지역의 대학 졸업자보다 더 배려한다고 문제될 게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부터 대규모 지역사업까지도 참여시킬 일이다.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을, 지역 대학생들은 실무 습득을 할 수 있다. 지방대 진학을 꺼리고, 지역사회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리지는 입시로 개성과 창의성을 짓누르는 초·중등교육,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육을 혁신할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 풍토에선 창의성을 키우기는커녕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도 사치다. 입시 교육만 받다 대학에 와선 정작 기초 학문도 익히지 못한다. 아무리 새 지식을 가르쳐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

 지난 대입 수능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서울 강남지역 재수생 비율이 전국 평균을 두 배나 웃돌았다. 학력수준이 높아 대학진학률이 높을 것으로 여겨진 곳이다.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재수한 학생이 적잖다고 추론할 수 있다. 입시학원으로부터 욕먹을 얘기지만, 재수는 사회적 낭비다. 이들이 칼리지에 들어가 적성과 진로를 찾아 원하는 대학에 편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아니면 취업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내일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다. 69만여 수험생들은 부들부들 떨며 첫 교시를 기다린다. 이 시험에 인생이 걸렸다는 생각에 극도로 긴장한다. 이들에게 재수가 아닌, 인생을 설계할 또 다른 기회를 정녕 줄 수 없단 말인가.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