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새 주인 찾기에 나섰던 하이닉스 매각이 주가 상승과 SK그룹 압수수색이라는 돌발 변수 등장으로 다시 파국을 맞았다. SK텔레콤이 본입찰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 나오면서 하이닉스 채권단은 사실 파악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주가상승에 그룹 리스크 겹쳐 ‘포기’=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은 지속적인 하이닉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인수가격 부담, 8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검찰의 SK그룹 압수수색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 변수 중 어느 하나라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지난 8월 1만5000원 수준이었던 하이닉스 주가는 8일 2만3000원대로 3개월 전에 비하면 50%가량 급등했다. SK텔레콤 내부에서는 인수가격 상승 부담으로 인해 인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SK그룹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이 취해지자 그룹 위기관리 차원에서 하이닉스 인수 포기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는 게 SK텔레콤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실상 인수 포기로 ‘생채기’=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원점 재검토는 새 주인을 기다리던 하이닉스는 물론이고 SK텔레콤에도 생채기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업계와 증권가는 지난 7월 초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통신과 반도체 간 시너지 효과를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데다 SK그룹 자체가 제조업 분야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통신+반도체’ 그림보다는 SK그룹의 수출기반 확보 의지가 현금상황이 좋은 SK텔레콤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을 제기했다.
SK텔레콤 측은 통신과 반도체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지난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하이닉스의 현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추가 영역에서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SK그룹 압수수색이 벌어지자 인수 재검토로 돌아선 것은 과연 ‘통신+반도체’ 그림 아래 인수를 추진한 것인지의 지적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주가상승 요인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 결국 기업의 전략적 투자 결정이 사업 외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또다시 매각이 불발되면서 도약의 기회를 상실하게 됐다. 현재와 같은 CEO 중심의 경영이 이루어지겠지만 과감한 투자집행을 통해 점유율 확대나 신규사업 진출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만큼 매각작업도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기대했던 매각이 무산되면서 ‘하이닉스=위험한 투자’라는 주홍글씨만 더 선명해진 것 아니냐는 반도체업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채권단과 외환은행 역시 매각 지연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수색 여파 어디까지=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8일 오전 6시 30분부터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 내 SK홀딩스와 SK가스 사무실을 찾아 회계장부와 금융거래 자료 등을 수색했다. 압수수색은 이날 오후까지 계속됐다.
압수수색은 SK그룹 계열사들이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출자한 자금 가운데 500억여원이 자금세탁을 거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물투자에 동원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 상무 출신 김준홍씨(46)가 대표로 있는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SK그룹 계열사들이 2800억원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투자금 일부가 빼돌려졌다는 의혹이 있어 수사를 벌여왔다.
최 회장은 지난 4일 글로벌 에너지 기업 렙솔과 윤활기유 합작 공장에 대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아직 귀국하지 않고 있다. SK 계열사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룹 경영에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결과상으로는 기업에 부정적인 미칠 내용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의 압수수색은 오히려 그동안 수사를 벌여온 연장선으로 마무리 단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면서 “하이닉스 인수는 별개 사안으로 이와 관련한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채권단 “당혹스럽다”=이날 오전까지 별다른 의사를 전달받지 못했다며 사태를 관망하던 채권단은 오후 들어 ‘사실상 포기’로 굳어지자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후 채권단 회의가 소집돼 대책 마련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채권단 대표인 외환은행 측은 “통상적인 회의”라며 “SK텔레콤으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 특별하게 내놓을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에 한 채권단 관계자는 “본입찰을 사흘 앞둔 상황에서 맞이한 갑작스러운 상황은 당황스러울 뿐”이라며 “본입찰 기간을 연기하면서 매각 성사를 위한 요건 맞추기에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고 허탈해했다.
하이닉스 내부는 상황 변화에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입장 표명은 자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본입찰까지 기간도 남았고 SK텔레콤이 최종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라 별다른 의견은 없다”며 “다만, 매각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기술 개발이나 투자는 애초 계획대로 집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표>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일지
2000년 12월 유동성 위기 발생
2001년 10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채권금융기관협의회 공동관리 실시
2004년 10월 비메모리 사업부문 매각 완료
2005년 7월 채권단 공동관리 조기 종료 확정
2009년 9월 효성그룹 단독으로 하이닉스 인수의향서(LOI) 제출했으나 철회
2009년 12월 2차 매각공고. LOI 제출 기업 없어 매각 불발
2011년 7월 8일 SKT·STX, LOI 제출
2011년 7월 25일 SKT·STX, 예비실사 착수
2011년 9월 9일 예비실사 종료.
2011년 9월 19일 STX 인수 추진 중단 결정
2011년 10월 채권단 본입찰 일정 두 차례 연기(10월 24일에서 11월 3일로, 이후 11월 10일로)
2011년 11월 8일 SK텔레콤, 하이닉스 입찰 포기 결정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박창규기자 kyu@etnews.com,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주가 폭등과 그룹 압수수색 변수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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