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전성기를 지나고 인터넷 보급이 한창이었다. 다음·야후·라이코스 등 포털사이트가 주가를 올리던 1999년 무렵이다. 당시 포털사이트들은 “인터넷은 가까운 미래에 생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전문가들도 ‘인터넷=생활’이라는 등식에는 100%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불과 몇 년 후 인터넷은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10여년 전만해도 첨단 기술이나 산업을 소개할 때나 붙던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됐다. 인터넷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각종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 인프라 역할을 하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인터넷 강국 대열에 올라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잘 깔린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는 세계적인 자랑거리였다. 각종 민원을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자정부시스템은 대한민국의 정보화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기질 탓이었던가. 인터넷을 흡수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고 ‘세계 최초’ 또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이라는 수식어도 수없이 나왔다. 싸이월드·MP3플레이어는 인터넷이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그러나 이 두 상품의 전성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유튜브는 싸이월드 열풍을 잡았고 애플 아이팟은 MP3P 시장을 평정했다.
왜 일까. 답은 인문·사회·철학에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뛰어난 기술력에 미래를 이끌어 갈 기초체력(인문·사회·철학)을 함께 버무려야 한다. 우리는 싸이월드나 인터넷 카페에 직접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면서 즐겼지만 정작 이런 활동을 정의하는 단어가 없었다.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의미하는 UCC라는 말의 등장, 그리고 단순함과 편리함을 무기로 한 유튜브가 등장하자 싸이월드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아이팟도 마찬가지다. 아이팟의 성공 비결은 디자인과 단순화로 요약된다.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기능을 최소화함으로써 사용자가 복잡하게 느끼지 않게 한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을 이끌어 낸 아이폰 역시 사용자를 배려한 인문·사회·철학이 녹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그리드라는 또 하나의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전력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에너지효율을 최적화하는 똑똑한 전력망이다. 여름·겨울철 전력피크를 분산해 전력대란을 방지해주는 수요관리 기능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몇 년 후면 생활의 일부가 된다.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이자 다양한 산업과 비즈니스를 창출할 신성장 동력이다.
2009년 12월 시작한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구축 사업이 1단계사업을 마치고 7월부터 2단계 사업에 돌입했다. 16일부터는 서울 삼성동 일대에서 ‘제2회 코리아스마트그리드위크’가 열린다. 작년에는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와 종합홍보관 홍보, 그리고 국가 간 협력회의가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비즈니스 창출에 비중을 뒀다. 그간 개발한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고 기업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꾸며진다. 우리나라 스마트그리드 비전을 보여줄 기회다.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는 국가 전력망과 IT에 인문·사회·철학을 결합해야 비로소 글로벌 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문정·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