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SKT 하이닉스 경영메시지 정제해야

 23년이 걸렸다. 지난 1988년 구옥희 선수가 한국여성으로는 처음으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서 우승한 뒤 100승까지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지난달 최나연 선수가 사임 다비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낭자들은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1988년 구옥희 선수가 LPGA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다시 한국인이 LPGA에서 승전보를 전하는 데는 6년이 걸렸다. IMF시대 영웅 박세리 선수가 1998년 우승한 이후에는 매년 수차례 우승소식을 국내에 알렸다. 2009년에는 한국선수가 무려 12회 우승, 거의 매달 승전보를 전하기도 했다.

 남자대회인 PGA서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2002년 최경주 선수가 컴팩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PGA 우승한 이후 현재까지 한국인 우승횟수는 10회에 그친다. 최경주 선수 8회, 양용은 선수 2회가 전부다. 물론 아시아권에서는 톱 수준이지만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낭자들과 비교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남자 선수가 더 분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총상금 규모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올해 PGA투어 총 상금규모는 약 2896억원으로 KPGA(약 479억원)보다 6배 정도 많다. PGA가 인기가 많고 경쟁도 치열한 때문이다. 한국 낭자들이 LPGA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면 남자들이 그렇게 못할 이유도 없을 듯싶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골프를 모르는 문외한의 당위론일 뿐 현실이 되기에는 높은 장벽이 있는 것 같다.

 반도체산업도 엇비슷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20%에 그치는 메모리 시장에서는 국내 기업이 70%를 차지하지만 메모리 4배 규모인 시스템반도체에서는 고작 5% 점유율에 그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를 잘하기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도 잘 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얘기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미약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SKT 하이닉스 인수 작업은 9부 능선을 넘었다. 입찰 금액도 채권단 요구 금액보다 1000억원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를 기간산업으로 선정한 국가로서도, 10년간 버팀목이 될 주인이 없었던 하이닉스에도, 신성장 동력 발굴이 절실했던 SKT에도 모두 좋은 일이다. 다만 과도한 메시지는 시장에 불안감을 남긴다.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는 기업 수장이 우리나라나 일본 비전문가들만이 사용하는 ‘비메모리’란 잘못된 용어를 쓰면서 “하이닉스 인수 후 비메모리사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다. 마치 한국 여자들은 LPGA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데 남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메시지는 다양한 정보전달 통로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전달된다.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경쟁사, 투자자들의 혼란을 부를 수 있다. SKT는 이제 하이닉스 인수주체로서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이닉스 경영자로서 보다 냉철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정제할 때다.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