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맨들 사이에 새롭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서점에만 가 봐도 경제와 인문학을 연계한 책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속되고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음에도, 기존 금융공학이나 경제학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앞에 결국 인문학적 통찰력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애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고 이끌어갈 때 국경을 넘는 경쟁력을 갖게 됨을 시사한다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잡스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분야 우물도 넓게 파야한다. 복잡한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적인 방향으로 과제해결을 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가 절실한 것이다.
융합형 인재만이 기존 질서와 틀로는 극복할 수 없는 21세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첨단 선진 기술을 보유한 일본이 과거 매뉴얼에 얽매여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대지진에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일본 대지진처럼 21세기는 기상이변과 사회 변동 폭이 우리가 익히 알고 대처했던 궤도를 벗어날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융합 지식을 가진 창조적인 인재가 꼭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이 같은 인재를 육성해내려면 학문의 융합이나 융합연구 활성화가 필요하다. 대학교육에서 다양한 융합학과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도 이 같은 고급 인재들을 키워낼 뜻 깊은 시도다. 필자가 속한 KIST 역시 융합연구를 위한 연구조직들을 새롭게 만들었고 과학자들에게 인문학 특강, 문화예술 공연프로그램을 연구자들에게 제공하여 다른 분야와 교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인재 육성을 위해 문·이과를 폐지하거나 과거 문리대를 부활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고등학교 2학년에 문·이과로 분리되면, 문과 출신들은 과학에 흥미를 잃고 이과 출신은 인문, 사회적 현상에 둔감해지는 부작용을 일찍부터 겪으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국문학과에서도 미적분을 배우고 유전공학과에서도 니체를 배우는 선진국 교육처럼 우리도 이제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비단 KIST와 같은 과학기술 연구기관 뿐 아니라 기업과 산업계 등 사회 곳곳에서 지금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배들이 과거 근면과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한민족 특유의 뛰어난 두뇌에 창의적 발상으로 21세기 세계시장을 이끌어가야 리더들이 필요한 것이다.
게리헤멀은 ‘경영의 미래’에서 “기업 성공에 공헌하는 사람은 열정 35%, 창의성 25%, 추진력 20%, 지성 15%, 근면 5%를 갖춘 사람”이라 표현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추진력, 부지런함을 지닌 한국 젊은이들, 이들을 보다 창의적인 융합형 인재로 육성해낸다면 우리 과학기술도, 우리의 경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같은 인재들이 과학계의 기둥으로 성장할 때 우리과학도 ‘게놈(Genome) 프로젝트’, ‘인간의 달 착륙’ 같이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갖게 될 것이다.
문길주 KIST 원장 kcmoon@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