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인하대학교 교수 trade@inha.ac.kr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드디어 국회에서 비준됐다. 비준되기 전에는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가 쟁점이 되더니 비준 이후에는 국회 비준과정에서의 해프닝에 국민 관심이 온통 쏠리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경찰의 물 폭탄 강경진압에 분노하는 여론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미 FTA에 대해 세세하게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하거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이웃나라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선언했고, 중국은 ASEAN+3(한·중·일), ASEAN+6(한·중·일·인도·뉴질랜드·호주)를 통한 무역자유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해 한미 FTA 혜택을 보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이번 한미 FTA는 그만큼 큰 변화다.
우리나라 역시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0년말 기준으로 한국 평균 관세율은 12.2%다. 미국 3.5%, EU 5.6%, 일본 5.4% 보다 높은 수준이다. 1984년 수입 자유화 정책을 기점으로 1996년 OECD 가입, 1997년 외국인투자 전면 개방, 2004년 한-칠레 FTA 등 강도 높은 무역투자 자유화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선진국보다 높은 관세장벽을 통해 우리 산업을 보호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과 첨단 선진 기술을 보유한 미국에 앞으로 5년간 95%의 관세를 철폐한다는 것은 그만큼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아마도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영하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장외투장에 참여하는 단초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 보다는 이해득실을 따져 냉정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GDP 2만달러를 넘어서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은 80년대 11.6%에서 90년대 6.7%, 2000년대에는 4.3%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지만 2016년 이후에는 실질 GDP 성장률이 1.8%로 떨어지면서 OECD 평균인 2.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성장의 돌파구를 위해서는 과감한 개방과 혁신만이 살아남을 길이며 우리가 FTA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선택은 항상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를 함께 수반하기 마련이다. 1995년 WTO 가입 이후 유통시장을 개방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15년여가 흐르자 SSM의 골목상권 잠식 문제가 나타났다. 1997년 외국인투자를 전면 개방할 때 모두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집어삼킬 것으로 우려했지만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국내 시장을 울타리로 성장해온 중소기업들은 한미 FTA를 계기로 자의든 타의든 국제 경쟁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할 것인가는 한미 FTA의 성과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찬반 논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회가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나 비판 역시 우리 경제 미래를 위해 성숙한 논의가 필요하다.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교각살우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이나 견제는 계속 돼야 한다. 다만 비판이나 견제는 사실에 입각해서 건전하고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정부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마냥 외면할 것이 아니라 이를 충분히 경청해 향후 협상에 반영하고 후속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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