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사의를 표명한 박병엽(49) 팬택 부회장은 1991년 ㈜팬택을 설립해 20년간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20년간 회사를 굳건히 지켜왔다.
박 부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팬택이 워크아웃을 받아온 지난 5년 반 동안 지독한 격무로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쳤다"며 "오는 31일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 휴식을 갖겠다"며 사의를 밝혔다.
1962년 12월30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박 부회장은 1987년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면서 무선통신기기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1991년 맥슨을 그만두고 서울 신월동의 작은 사무실에 팬택을 차려 직원 6명과 함께 무선호출기 사업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 CDMA 이동전화 단말기로 팬택의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2000년을 기해 팬택의 대표이사 사장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직함을 고쳐 달았다.
회사의 최고위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부회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50세가 넘어 업계 경력을 30년 이상 쌓고,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고 나서야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1년엔 현대큐리텔을, 2005년엔 `스카이` 브랜드 회사인 SK텔레텍을 인수하며 승승장구하며 `팬택 신화`를 일궈갔다.
하지만 2006년 세계적으로 대유행 한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레이저`에 밀려 유동성 위기를 맞은 팬택은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만다.
그는 2006년 워크아웃 돌입에 앞서 "창업자로서 회사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빈손으로 나가겠다"며 팬택의 회생을 위해 창업주로서의 모든 것을 반납하고 `백의종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채권단의 요구를 잘 이행하는 한편 끊임없는 자구노력으로 지금까지 17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흑자 행진의 중심에는 박 부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박 부회장은 올해 초 스마트폰 전문회사로 변신하겠다는 `위험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는 팬택 구성원들의 참여로 시리우스, 미라크, 베가 시리즈 등 스마트폰을 잇달아 내놓으며 현재 팬택을 국내 스마트폰 2위 제조업체에 올려놓았다.
채권단과 주주들도 이 같은 노력을 인정해 작년 박 부회장에게 전체 발행주식의 10% 규모인 총 1억6천400만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이례적으로 부여했다.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현재 98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팬택 매각시에 행사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채권단 지분을 우선 취득할 수 있는 권리)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워크아웃 졸업을 눈앞에 둔 시점에 그가 돌연 회사를 떠나겠다고 한다.
건강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의 사업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팬택을 떠나기에는 충분한 사유로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사의표명으로 내몰았을까. 그는 다시 돌아올까.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