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대전이 끝나자 미국의 뜻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모였다. 이들이 논의한 대상은 “과연 미국이 독일에게 승리하였는가”였다. 전쟁엔 승리했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패배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의 자리이기도 했다. 2차 대전 중 개발한 최신 무기들이 원자폭탄 하나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미국 첨단기술이 독일에 뒤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구경 38cm 대포를 장착한 5만톤급 비스마르크 전함을 비롯해 뉴욕 해안까지 침투를 하였던 U2잠수함, 영국인 간담을 서늘케 한 V2로켓은 연합군에게 생각하지 못한 최첨단 과학기술 집합체였다. 무엇이 미국을 뒤떨어지게 했는가? 미국 과학기술인들은 대학 공학교육이 매우 단기적이었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미국의 종래 공학교육은 산업현장에 직접 투입할 기술자를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이른바 매뉴얼엔지니어(Engineers with Manual)가 대학 교육 근간이었다. 이 덕분에 미국 제조업은 세계 최강이 됐으며 업계는 재교육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계 위주 공학교육은 새로운 것을 개발하거나 학문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 결과로 미국은 독일보다 새로운 무기 체제에서 뒤떨어지게 된 원인이 됐다.
미국 과학기술인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국가보다 과학기술에 앞서기 위해 공학교육에 기초과학이 필수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1950년대 대부분 공과대학은 기초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더욱이 옛 소련이 우주탐사 프로그램에서 앞서나가자 미국은 자극을 받았다. 공대 교과과정에 기초과학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대학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대전환을 했다. 이 공학교육 개편은 미국을 다시 과학기술계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전시켰다.
이 개편도 사회 변화에 따른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공학교육은 자연히 생산현장의 비용을 증가시켰고 우수 인재들이 산업 현장보다는 연구소, 학교로 진출해 서서히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제조업 진출은 1980년대 미국 제조업을 황폐화하는 데 일조를 했다.
사회 다변화에 따라 단순했던 대학 교육도 많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4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에 고등교육인으로 교육과 사회 전문성 욕구에 만족시킬 전문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신과 교통 발달로 국내에만 머물었던 대학교육이 국제경쟁의 대상이 되자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함은 시대적인 사명이 되었다. 이 욕구를 다소나마 만족시키는 방안으로 공대의 교육 연한을 5년으로 늘리고 아예 학사학위 대신 석사학위를 주는 제도가 탄생됐다. 또한 대학교육은 사회요구에 직접대응하기보다 어느 분야에도 적응할 기초를 중심으로 한 교육으로 변했다. 점차적으로 교육 중심이 대학 교육보다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원 교육으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맞춤형 교육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평가에서 취직률이 중요한 요소로 되다 보니 당장 학생을 취직시키는데 유리한 학과를 만들고 교육시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교육비를 줄이는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봐 산업계 자체와 개인에게 결코 바람직스러운 교육은 아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계속 변화해 나간다. 이에 비해 4년 동안 대학에서 받은 교육이 어느 한 분야에 치우쳐 있으면 앞으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학의 교육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단기적인 목표만을 위한 다면 이는 국가의 큰 손실일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매우 불행한 것이기도 하다.
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