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발표되자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에 쏠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 언론도 남북 관계와 핵 개발, 북한 권력 구도 등 굵직한 이슈의 향후 전망을 앞다퉈 보도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한국과 중국, 일본 언론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김 위원장의 죽음을 나타낸 표현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3국 3색의 단어는 저마다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한국 언론은 대개 ‘김정일 위원장 사망(死亡)’으로 표기했다. 언론마다 정치적 색깔이 다르지만 사망이 대세였다. 일부 신문은 ‘급사(急死)’라는 말까지 꺼냈다.
보통 외국 수반이 죽으면 우리 언론은 보통 ‘서거’라는 표현을 쓴다. 사망은 리비아 카다피나 이라크 후세인의 죽음에 붙였다. 북한이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국민적 반감이 김 위원장 죽음의 격상을 막았다고 보인다.
일본 언론은 ‘시쿄(死去)’라는 단어를 썼다. ‘시보(死亡)’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존칭 표현은 아니다. 일본어에도 ‘세에쿄(逝去)’라는 사망의 존칭어가 존재한다. 핵미사일 때문에 북한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객관성은 유지하려는 자세로 풀이된다.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은 ‘스스(逝世)’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글로 바꾸면 ‘작고하다’ 정도인데 장중한 의미까지 들어 있다. 중국어도 일반적인 죽음은 ‘스왕(死亡)’이라고 한다. 북한과 중국의 우호선린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 선택이다.
한중일 3국의 다른 표현은 한자 문화권에서 기인한다. 한자는 하나의 현상이라도 여러 가지 표현을 갖고 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전달하는 바는 크다. 언론에서 선택한 단어는 더욱 그러하다.
북한 주민의 기본적 민주주의마저 보장하지 않은 김 위원장을 두둔할 마음은 애초에 없다. 다만 합리적 통일을 위한 초석이 남북 평화 관계 유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소한 김 위원장의 죽음을 폄훼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장동준·국제부 차장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