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과학기술 우대정책과 청소년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1980~9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낳았다. 그러나 21세기 초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면,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어스의 평이다. 정확한 예측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다.
이공계 르네상스의 담론화는 최근 국가적 ‘어젠다’로 부각했다. 얼마 전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의 정식 안건으로 다뤄졌다. 요지는 간단하다. 1960~80년대의 산업발전 정책으로 이공계로 유입된 인재들이 국민소득 60달러를 2만달러로 증대시킨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성장 동력이라는 점이다. 앞선 사이언스의 지적과 일치한다.
지금도 선명한 1997년 IMF의 아픔, 이때부터 시작한 이공계 인력 감소는 2000년대 들어 수능 자연계열 응시자 급감으로 이어졌다. 이공계 위기감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현상으로 확산됐다. 그 정점이 지난해 서울대 공대의 굴욕이다.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등록을 포기한 인원은 총 153명이었다. 이 중 공대합격생이 64명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정시모집에서도 등록률 하위 5개 전공이 모두 이공계열이었다.
반면, 의학전문대학원은 호황이다. 지난해 의·치전문대학원 응시자는 9783명으로 제도도입 첫해 2297명보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공계 우수인재들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몰린다. 국공립연구소 종사자의 38%는 연구 환경이 좋은 외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공계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은 신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공계 전공희망자들이 안정적인 의학계로의 쏠림 현상은 뚜렷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우리나라는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눈앞에 뒀다. 일각에선 FTA로 인해 GDP 3만달러 시대로 갈 것이라는 장밋빛 예찬론이 있는가 하면 3~4년 후 고용불안과 무역적자가 심해져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IBM은 한국이 현재와 같이 선진국을 추종하는 모방자 전략을 버리지 않는다면 원천기술로 무장한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며 노동력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한 BRICs 국가들에게 추격을 허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BM은 한국 경제 문제점으로 20년 동안 성장 동력이 활력을 잃고 정체된 점을 꼽았다. IBM 분석결과, 한국의 GDP 순위는 1990년대 이후 20년 동안 11위권에 머물며, 1인당 GDP 또한 10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FTA시대에도 한국 경제가 이와 같이 정체된다면 제2의 경제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보다 외국기업이 더 우리를 잘 알고 있다.
성장 동력이 사라진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원천기술 갈구도 없어졌다. 상대평가되기 때문이다. 힘들여 연구하고 성과물을 내놓아도 이를 전결하는 책임자는 법대, 상경대 출신의 인문학도들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 직격탄을 맞는 부분이 이공계 엔지니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공계 르네상스를 위해 ‘종잣돈’(시드머니)를 내놓을 기업은 그리 많지 많다. 성장 동력 중 하나였던 벤처붐도 사라졌다. 이공계 창업의 ‘시드머니’가 원천 차단되니 순환하지 않는 것이다.
답은 하나다. 정부의 정책변화다. 중국의 이공계 우대정책을 교훈삼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이 시장경제 개방화 조치 이후 이공계출신 우대정책을 펴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1970~80년대 성장방식을 ‘롤 모델’로 보기 때문이다. 녹색기술, 첨단융합기술, 로봇산업 등 신성장분야를 견인해야만 우리의 미래는 보장된다. 그 중심에 이공계 핵심인력이 있다.
임중연 동국대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 교수 andyjyl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