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ICT · 과기 거버넌스 새틀 짜자"

 새해가 밝았다. 2012년은 정치적으로 격변이 예상된다. 당장 19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차기 대통령 선거가 걸려 있다. 4월 총선을 시작으로 12월 대선까지 선거 정국이 도래하면서 산업계도 적잖은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정권 교체기에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가 정부 조직 개편이다. 벌써 정치권과 일부 부처를 중심으로 차기 정부 개편 방향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번 정권에서 홀대를 받았던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업계는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시행착오를 개선하고 새로운 흐름에 맞게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소프트파워로 무게 중심, 새로운 거버넌스 필요

 정보통신과 과학기술과 같은 하이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거버넌스 논의가 활발한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산업과 시장 패러다임이 변한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과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정책적 지배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난 4년동안 시행착오에 비춰 볼 때 좀 더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깔려 있다.

 먼저 사회구조가 ‘소프트 파워’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산업도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1만명 당 연구인력은 2000년 23.1명에서 2009년 50.1명으로 늘었다. 이는 일본 53.5명, 미국 46.8명 등 기술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치다. SCI논문 편수도 2000년 1만3459편에서 2010년 3만9843편으로 껑충 뛰었다. 지적 재산과 같은 무형의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며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는 이야기다.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도 잘 짜여진 집단 중심의 조직력에서 개인 감성과 창의적 아이디어 비중이 높아졌다. 한 마디로 산업화에 이어 정보화를 거쳐 지식창조 시대 문턱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지식창조 시대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보통신과 과학기술과 같은 ‘하이테크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실제로 정보화 시대 이후 사회 변화의 동력은 이념이나 사상 혹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IT였다. 스마트폰 하나가 일상 생활을 ‘180도’ 바뀌어 놓았으며 구글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는 정보의 생산과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미디어 지형과 사회 소통 방식에 지각 변동을 가져 왔다.

 

 # 스마트 융합 시대, 산업 리더십의 변화

 IT가 사회진화를 주도하면서 변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다. IT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사회를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IT업계를 관통하는 화두는 ‘스마트’다. 스마트는 단말기와 서비스의 융합이다. 음성·동영상·데이터가 디지털화하면서 유무선 전화망,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망, 유무선 인터넷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개별 망으로 음성·동영상·데이터 서비스를 모두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무선 전화망·방송망·인터넷망이 모두 All-IP기반으로 진화하면서 서비스와 단말이 만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방송과 통신, 콘텐츠 산업의 전통적인 경계가 허물어지고 가전·컴퓨터·인터넷·콘텐츠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새로운 산업과 정책 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는 지식창조 시대로, 시장은 융합화가 뚜렷하지만 불행히 우리는 아직도 산업화 틀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기술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 끼어서 경쟁력을 잃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 체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집중도는 점점 높아지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탄력을 잃었으며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 지식 창조에 기반을 둔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가 당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 방통·과기 정책의 실패, 새로운 리더십 필요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과 과학기술 분야에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었지만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 방통위 4년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방송은 지나치게 정치 편향적이었고 통신은 사실상 정책이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식창조 시대 문턱에 진입했지만 핵심 역할을 맡을 IT는 오히려 시장과 산업에서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IT 컨트롤타워’ 재건 논의가 업계에서 설득력을 얻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지난 기간 동안 ‘IT강국’이라는 명성이 부끄러울 정도로 뒷걸음질쳤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IT산업 경쟁력 지수는 5년 연속 하락했다. 정보통신기술(ICT)개발 지수 보고서에서 2006·2007년 2년 연속 1위였던 우리나라 순위가 2009년 2위, 2010년 3위로 추락하고 세계경제포럼(WEF) 네트워크 준비지수 순위도 2007년 9위에서 지난해 15위로 떨어졌다.

 과학기술 분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 R&D예산을 꾸준히 확대하고 과학벨트를 설립하는 등 기초연구진흥 기반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응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를 과학기술부 폐지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창의적 연구환경은 부처의 잦은 간섭, 불안정한 연구비, 단기적 성과 요구로 저해 받았다. 선도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세계수준급 과학인재가 턱없이 부족했으며 연구관리 시스템도 부실했다. 이 때문에 연구 결과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아 IT강국은 과거의 영예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교과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2011년 정부업무평가’에서 핵심 과제 수행면에서 나란히 ‘미흡’ 평가를 받았다.

 전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낸 이병기 교수(서울대)는 “거버넌스 문제는 단순히 부처의 통폐합, 기능 재조정에 국한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며 “개방·협력·공유라는 큰 틀에서 국가와 산업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포스트’ ICT·과학기술 거버넌스 논의 급물살

 이명박 정부에서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거버넌스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가장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부처가 ‘방송통신위원회’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친 방통위는 출범 4년이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방송통신융합이라는 큰틀에서 방송과 IT규제 업무를 통합했지만 방송은 정치적 논란만 부추겼고 산업은 뒷걸음질쳤다는 주장이다.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정통부 부활론’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새로운 정보미디어부와 같은 독임 부처의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통부가 해체되고 정통부 업무가 문화부·방통위·지식경제부·행정안전부로 뿔뿔히 흩어지면서 ‘IT컨트롤타워’가 없어져 IT산업 육성에 실패하면서 IT강국 지위가 추락했다는 논리다. 옛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4년을 ‘IT의 잃어버린 4년’이라고 규정하며 정보통신부 격인 ‘정보미디어부’ 신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방통위에서 IT업무를 떼내 독임제 행정부처로 운영하자는 이야기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조차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차기 정부에서 다뤄야 한다는 전제 아래 새로운 위상을 가진 정부 부처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거버넌스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이명규 의원(한나라당)은 지경부 내 IT지원부서 등 확대 개편을 통한 ‘IT산업정책실’ 신설을 주문했다. 이에 앞서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정부는 IT컨트롤타워가 아닌 IT서포트타워 개념이 맞다”고 주장한데 대해 힘을 실어 준 것이다.

 IT컨트롤타워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용경 의원(창조한국당)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방통위 조직개편 방향에 대한 정책보고서에서 정통부 부활론을 비판했다. IT산업 경쟁력의 하락은 하드웨어 중심인 국내 IT산업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독임제 부처 신설로도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방통위는 산업육성 기능보다 규제 중심의 독립위원회로 재편돼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 통합기구를 유지하되 규제 기능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 주장은 언론계에서 제기되는 방통위 역할 축소, 재조정론과 맥이 닿아 있다. 방통위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논의구조가 정치적이어서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와 산업육성 기능 모두를 가진 방통위가 규제 중심의 위원회로 역할을 집중하면서 순수한 산업육성 기능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반론이다.

 가장 최근에는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정책연구소에서 1여년 동안 준비한 차기 정부 조직 개편안을 제시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조직 개편안의 골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정보미디어부’와 ‘연구개발부’를 신설해 ICT산업과 기술을 총괄하는 독임 부처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정보미디어부는 방송통신위원회·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 등으로 흩어진 ICT업무를 흡수하고 방송과 관련한 규제 업무는 ‘공공방송위원회’ 형태로 전문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기초 연구 진흥을 주된 업무로 하는 연구개발부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교과부 주력인 교육 분야는 ‘창의교육부’로 재편해 교육정책, 초중등 창의교육 실현, 대학교육 질적 수준 제고 등 순수 교육 분야만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 한국의 IT경쟁력 지수

 ·2007년 3위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0년 13위

 *자료: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EIU)

 

 <표2> 지식 재산 변화 추이

 * 인구만명당 연구인력 / 23.1명(2000년) --> 50.1(2009년), 일본: 53.5명, 미국 46.8명

 * SCI논문 / 16위·13,459편(2000년) ---> 11위·39,843편(2010년)

 * (미국)특허등록건수 / 6위·3,314건(2000년) --> 4위·8762건(2009년)

 * R&D투자(GDP대비) 2.3%(2000년) --> 3.74%(2010년, 세계 10위)

 * 벤처기업수 / 2042개(98년) --> 26,376개(2011년)

 출처: 과실련 차기 정부 조직 개편 보고서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