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재창업 깃발 든 박병엽

 어렵다고도 했다.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라고도 했다. 분수를 모른다고도 했다. 과욕이었다는 힐난도 따랐다. 촌놈의 한계라고도 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하지만 그는 우직하게 그의 길을 갔다.

 박병엽, 그의 이미지는 극단이다. 한때는 IT코리아의 대표적인 성공 벤처인이었지만,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실패한 경영인이 됐다. 그런 그가 워크아웃을 벗어나 다시 전장의 장수로 우뚝 섰다.

 4년 8개월만의 워크아웃 졸업. 기자와 만나 ‘졸업’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은 흡사 초등학교 졸업생을 연상시킬 정도로 상기돼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충혈된 눈가엔 잠시 지난 세월의 그림자가 스쳐갔다.

 창업이란 무엇인가. 그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였다. 작은 전자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출발한 그의 삶은 처음부터 생존의 문제였다.

 순풍에 돛단 듯 했다. 회사가 무선호출기의 바람을 톡톡히 봤다. 물론 어려움도 사인 코사인 곡선을 타고 오르내렸다. 큐리텔을 인수하고 마침내 SK텔레텍까지 합병했다.

 너무 잘 나갔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불안의 전주곡이라고나 할까. 워크아웃 직전 그의 팬택은 전성기를 맞았다. 국내에서는 확실한 빅3로 올라섰고, 글로벌 10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브랜드 전략도 확장했다. 전선도 넓혔다. 세계 50여개국으로 진출했다. 세계 최강 노키아, 모토로라가 진주해 있던 곳들이었다. 전선도 넓어졌고 적군도 많아졌다.

 여파가 컸다. 전선을 확대하다보니 전비가 불어났다. 2006년 빚이 자산을 넘어서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채권단에 넘기고 그도 빈털터리가 됐다. 10년만에 다시 제자리였다.

 와신상담이라고나 할까. 수많은 임직원과 주주들의 희생도 뒤따랐다. 그가 받은 상처도 컸고 그가 준 상처가 독이 돼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가 다시 우뚝 섰다. 그런 그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와신상담의 과정에서 임직원과 주주들의 희생을 잊지 말고 자신부터 혁신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문제다. 그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녹록치 않다. 시장에서 두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이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의 한계에 직면했다. SW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상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마케팅도 쉽지 않다. 규모의 경제가 도래한 탓이다. 그로선 세계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보급품도 적고 병사들도 부족하다. 단기전과 장기전을 대비한 각각의 전략과 전술도 완비해야 한다. 애플이라는 주적뿐 아니라 HTC, ZTE 등 도처에 숨어있는 다크호스도 경계해야 한다.

 스마트폰시대의 제갈량이라 할 수 있는 전략가도 필요하다. 피처폰 시대의 전략은 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했지만 이제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탈추격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세계를 호령하던 노키아의 추락이 반면교사다.

 말 그대로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통섭(統攝)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가 얘기한 컬처코드를 위해서라도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한 기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다시 그의 시작이다. 60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는 흑룡의 해 임진년, 그만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통섭적 사고와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의 바로잉(borrowing)의 철학을 겸비한 그만의 독창적인 경영학을 완성하라는 의미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