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과학영재의 선택

[월요논단]과학영재의 선택

 과학에 관심과 재능이 있어 과학고에 진학한 영재가 정작 진로를 의학 계열로 정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최연소로 서울대 공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한 과학영재 모 군은 연세대 치의대에도 동시에 합격했다. 그는 “컴퓨터공학과에 간다면 원래 좋아했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것이고, 치의대에 간다면 더 안정적인 미래를 택하는 것”이라며 진로를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치대를 선택했다.

 기성세대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 과학 교육을 책임지는 기관장으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 뒤에 있었을 깊은 고민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선뜻 인생을 걸지 못한 결정에 아쉬움이 있다.

 1970~1980년대는 과학과 기술이 가장 우대받는 시절이다.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소명 앞에 과학과 기술은 학문이나 경제적 의미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이를 실현할 희망의 도구의 다른 말이었다. 어린이들은 로봇이 나오는 미래 도시의 만화를 보며 우주여행을 꿈꿨고 이들이 자라 대거 이공계로 진학, 오늘의 기술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미래를 창조하고 개척해야 할 설렘의 대상으로 꿈꾸기 보다 현재를 희생해 대비해야 할 불안으로 인식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리스크를 안기보다 현 사회 시스템 내에서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 받을 가능성이 큰 곳으로 진로를 선택한다. 이를 현실로 인정할수록,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해도 진로로 택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와 모두가 불안해지는 악순환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아이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선택해 내일을 창조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성취를 이룬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해 우직하게 실행했다. 수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 성공을 일궈냈다. 선도적 성취자가 선택한 분야는 그가 성공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새 분야였다. 도전 당시의 ‘현실’적 시각으로 보자면 유망은커녕 전망 자체가 전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또 이들은 대개, 이공계와 인문계, 예술 등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탐욕스레 지식을 습득했다. 그 동기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흥미에서 시작했다. 영상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영상 아티스트라는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이나 스티브잡스가 좋은 예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대한민국 인구 구조와 평균수명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현 대학 진학 학생들이 고려하는 직업적 안정성은 그들이 정년을 맞을 때 즈음이면 의미가 매우 다를 가능성이 크다. 전망 또한 십 수년 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은 조금 후면 과거가 될 현재의 기준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분야를 조기에 발굴해 스스로가 그 분야의 전망이 되는 것이 불투명한 내일을 대비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꿈을 꾸고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도록 사회적 토양을 조성할 숙제를 안고 있다.

 국가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해도 이를 더 큰 성공을 위한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해 갈 사회적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이것이 인류에 공헌하는 의미 있는 길임을 안내해야 한다. 기업은 학생들의 꿈과 도전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임을 인지해 사회공헌을 확대하고 이들이 꿈을 가꿔가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hrkang@ko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