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발전산업도 `한류 마케팅`

[기자수첩]발전산업도 `한류 마케팅`

 얼마 전 발전소 설계 전문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접견 테이블 한쪽 구석에 ‘소녀시대’라고 쓰여 있는 박스가 보였다. 담당자에게 물어 열어보니 박스에는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정규앨범이 예쁘게 포장돼 있었다. 직원들이 해외출장을 가거나 해외 파트너 기업이 방문할 때 주는 기념품이었다.

 A사는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설계와 부지적합성 평가를 하는 공기업이다. 그동안 원전을 비롯해 국내 대규모 발전소 사업에 참여하며 전문성을 키워왔다. 최근에는 글로벌 EPC(설계·구매·시공)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앨범은 A사가 해외바이어 관심을 끌기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연예인을 이용한 마케팅은 휴대폰이나 TV·자동차·식음료 같은 소비재에서 많이 활용한다. 구매는 가격과 함께 제품 인지도나 친밀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설비산업 마케팅은 철저히 숫자와 정보에 의지한다. 가격·신뢰도·안정성·공사기간 등이 주요 사업자 선정 지표이며, 간혹 국제관계가 변수로 작용한다.

 A사가 발전사업 수출에 한류스타 앨범을 동원한 것은 다름 아닌 인지도 때문이다. 한국의 전력·발전 인프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지만 해외진출은 걸음마 단계다. 시장은 북미와 유럽·일본이 쥐고 있다. 기술력과 함께 한국 이미지를 각인시킬 매개체가 필요하다.

 발전산업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곳은 동남아시아·남미 지역이다. 한류가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덕분에 A사 한류스타 앨범 마케팅도 해외 바이어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전력은 한류스타 ‘JYJ’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장 개척을 위한 시도였다. 딱딱하기만 했던 전력·발전산업이 한류의 감성을 품고 현지인의 민심을 두드리고 있다.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사업은 수백개의 관련 회사가 참여한다. 설비기술력과 한류가 합쳐진 마케팅은 한국 전체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설계회사, 한국 설비회사, 한국 건설회사가 함께 진출하는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