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위한 컨슈머리포트](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1/30/235356_20120118110552_938_0001.jpg)
지난 2010년, 도요타는 신형 SUV 모델 ‘렉서스 GX460’ 대량 리콜을 결정했다. 미국 소비자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이 차량에 대해 고속 주행 시 자칫 전복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니, 소비자에게 구입하지 말라는 권고를 내렸기 때문.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던 도요타도 결국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하고, 리콜 조치를 내리게 된다. 세계 IT시장을 주름잡던 스티브 잡스 역시 컨슈머리포트에게 호되게 당한 피해자다. 하와이에서 편안한 휴가를 즐기고 있던 그가 서둘러 애플 본사로 달려갔던 이유도 다름 아닌 ‘안테나 수신 불량으로 아이폰4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컨슈머리포트 한줄 기사 때문이다.
미국소비자연맹(Consumers Union, CU)이 매달 발간하는 컨슈머리포트 영향력은 막강하다. 아무리 거대한 자본력도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컨슈머리포트를 구독하는 유료 독자 수만 무려 720만명에 달한다. 이유는 뭘까? 76년째 온·오프라인으로 컨슈머리포트를 발간하는 소비자연맹은 철저하게 구독료와 회비로만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광고주 입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상품 테스트를 위한 연구원만 400여명에 달하고 연간 250억원을 쓸 정도로 재정 기반이 탄탄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기업이 컨슈머리포트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은 시장 주권(主權)이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이양된 시대다. 소비자는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기술은 몰라도 상품을 선택하고 품질을 따질 때만큼은 냉철하다. 고객은 소비자 요구를 제대로 알고, 만족을 주는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이 ‘고객만족’을 강조한다. 상품 선택과 사용, 재구매 등 전체 소비 사이클을 통해 고객 만족을 결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품질이다. 기업이 컨슈머리포트에 실린 품질 기사 한 줄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제품이 특출하게 성공을 거두면 그 상품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뭔가 좋은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폰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애플이 갖고 있는 혁신적 디자인 역량과 이용자 편의를 고려한 유저 인터페이스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눈에 드러나는 좋은 속성과는 전혀 무관한 이유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품질 요소들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고 소비자 기호가 까다로워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품소비 사이클이 복잡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도 소비자 마음속에 꼭꼭 숨어 있는 품질 요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비자 권익은 물론, 기업의 품질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컨슈머리포트가 필요하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를 표방하며 최근 오픈한 ‘스마트컨슈머(www.smartconsumer.go.kr)’에는 국토해양부, 식약청 등 22개 기관 40개 사이트에 흩어진 업종별·품목별 소비자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기업에 당장 불리한 평가 내용이라고 무턱대고 거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평가 결과와 품질 속성 간의 인과관계를 차분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반영할 수 없는 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다양한 ‘소비자의 목소리(Voice of Consumer)’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공식 채널, 이것이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