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록교수의 창조정신 후츠파로 일어서라]<6>실패에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군대 전통은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에 잘 통했다는 이유로 특정 아이디어나 해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전쟁 개시 5시간 만에 판세를 뒤집고 6일 만에 영토를 3배나 넓힌 ‘6일전쟁’ 와중에서도 매일 그날 전쟁을 되짚어보는 엄격하고 꼼꼼한 점검시간을 가졌다.

 

 전쟁 중 정부조사단이 작전 수행 중인 군 간부들을 3일간이나 불러 작전방식 진상조사를 벌인 적도 있었다. 매일 매일이 승리의 연속이었으나 그날 작전 중 실패할 뻔한 내용을 끄집어 내 통상 90분간 토론 후 정리가 끝나야 하루를 마쳤다. 전쟁교본은 매일 새로운 교본으로 재탄생하기 때문에 전통이란 것은 애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결정에 변명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그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자는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건설적 실패’ 또는 ‘도전적 실패’가 모두 용인된다. 미지 세계에 도전 의식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를 함양해 준다.

 이스라엘의 진취적인 행동주의자를 의미하는 ‘비추이스트(Bitzuist)’ 정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살던 곳을 등진 사람들, 늪지대조차도 말려버린 정착민들, 그리고 작은 가능성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기업가들에게 흐르는 핏줄이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모두 처음부터 창업 귀재는 아니다. 그들도 창업 성공확률은 5%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6년 하버드대학 연구에 의하면 실패한 창업자가 그 다음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높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비록 이전 회사가 파산했더라도 새로운 회사를 다시 만드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쉬운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디지털 토양과 우수한 인재라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한국이 이스라엘만큼 벤처 창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6년부터 제네바와 제주도를 오가며 벤처 문화를 주제로 매년 열리는 ‘리프트 콘퍼런스’ 창시자 로렝 허그의 입을 빌자면 한마디로 ‘체면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남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수많은 벤처사업가가 새로운 경제 시류에 뛰어들었고 버블이 꺼지면서 그 즉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그들은 비좁은 한국사회에서 숨을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1998년 창업국가 반열에 첫 발을 들여 놓을 당시 벤처투자 규모는 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5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아이디어 있는 곳에 투자 있다”라고 하지만 한국에는 “아이디어 없어도 융자는 있다”라고 한다.

 투자가 아닌 융자는 실패하는 순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케네디 대통령이 인간을 달에 올려 보내는 아폴로 계획에 투자가 아인 융자를 했더라면 NASA가 1970년대가 지나기 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리 만무하다.

 삼성전자 ‘애니콜 신화’는 실패로부터 얻는 좋은 교훈 사례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이동통신 기술을 거의 갖지 못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 도시바 카폰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품질에 소비자 원성이 가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화선은 미스터 애니콜로 유명한 이기태 이사 지시로 시작됐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벌어진 ‘불량 제품 화형식’. 2000여 임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장 근로자들이 휴대폰과 무선전화기 등을 해머로 내리치자 15만대 제품이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난 제품은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졌고 불길이 잦아들 즈음 불도저가 다시 가루를 냈다. 돈으로 따지면 500억원이 연기와 함께 사라진 셈이다.

 임직원들은 혼을 담은 제품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하나 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타고 남은 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듯 잿더미 속에서 애니콜은 다시 태어났다. 대대적인 휴대폰 업그레이드 작업이 시작돼 현재 세계 최고 스마트폰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미국 IT산업 1세대 격인 앤드류 그로브 인텔 회장은 수 년 전 포브스 인터뷰에서 창조적인 힘의 원동력은 ‘두려움(Fear)’이라고 밝혔다. “편안하게 안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어렵고 힘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욱 건강 유지에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제 창업국가로서 이스라엘이 전 세계 벤처투자 31%를 유치하고 유럽 전체가 만들어내는 규모 창업을 일구며 세계 3위 지식국가로 떠오르는 노하우를 배워야 할 차례다.

 윤종록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jonglok.y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