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의 달인’다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워싱턴 의회 강단에 올라 펼친 신년 국정연설은 또 다시 미국인, 아니 세계인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4년 전 ‘희망과 변화(Hope and Change)’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를 외치며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 가슴에 희망의 불을 지폈던 열정이 다시 떠올랐다.
새 화두는 ‘공정(fairness)’이었다.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업률, 99%와 1%로 나눠진 양극화에 고통받고 있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그는 공정이라는 ‘위로’를 보냈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일자리를 늘려 다같이 행복할 수 있도록 위부터 바닥까지 일관되게 적용하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설장에는 이른바 ‘버핏세’,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집단의 상징적 인물인 워렌 버핏의 비서 데빗 보사네크가 초대를 받아 자리를 함께 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미망인 로런 파월 잡스도 참석했다. 과세 불평등을 해소하고 첨단 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실천적 의지의 표명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연설에 오바마 대통령의 페이스북은 수십만명 방문자로 북적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문(a favorite part)에 대한 질문에는 서민들의 아픔을 긁어준 데 대한 지지와 공정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한 바람이 수 천 건의 댓글로 빼곡히 담겼다.
각국 언론들도 오바마 대통령 연설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추진할 공정의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미국민과 큰 시각차를 보였다.
중국 신화통신은 즉각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조기업 유치전에 나서 그동안 선진국과 후진국이 역할 분담을 해왔던 글로벌 제조업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도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큰 악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산업계도 걱정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후속책으로 내달 중 법인세 개편안을 발표한다. 창업을 독려하고 제조기업의 U턴을 위해 법인세를 낮추는 한편, 국내 생산을 확대해 고용창출을 이루는 기업에는 세제혜택을 대폭 늘린다.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들에 주던 세제혜택은 폐지한다. 경쟁국들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재선이라는 대장정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살리고 미국인의 ‘경제적 평등(economic equality)’을 이뤄내겠다는 야심찬 공약을 내세운 데에는 토를 달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공정의 칼이 어디를 겨누느냐에 따라 여러나라 중산층과 서민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