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간 우리는 ‘스마트 혁명’으로 불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변화의 거센 물결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추측이 난무하다. 애플이 연이어 출시한 ‘i’시리즈 제품들(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은 음악·게임·인터넷 등 콘텐츠 산업, 통신 서비스, 통신용 반도체 등에 거대한 생태계를 조성했다.
애플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 출시로 촉발한 글로벌 플랫폼 주도권 경쟁이 스마트폰·PC·인터넷 등 전 분야로 확산됐다. 틈새시장에 눈치껏 뛰어들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새 시장을 활짝 열고 그 장에서 사용자·개발자·사업자가 적응해 살아가게 만들었다. 기술혁신과 함께 서비스혁신까지 이뤄 낸 모바일 혁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ICT 강국 코리아’는 미국 기업이 몰고 온 생태계 변화를 한 발짝 늦게 뒤 쫓아 가는 형국이다. 급격한 생태계 변화를 겪으면서 소프트웨어(SW)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한국ICT 위기론과 컨트롤타워 부재론 확산으로 정부도 바빠졌다. 작년 초부터 SW 강국의 전략과 정책을 추진한다. 그 어느 때보다 SW산업 진흥에 주력한다. 하드웨어(HW) 제조 강국인 우리의 기반을 활용하여 SW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런데 ‘과연 SW 산업을 집중 육성하면 새 생태계에서 강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SW 부분이 균형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ICT산업을 들여다보면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단말기 제조 경쟁력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통신서비스산업도 활성화됐다. 해외시장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식정보사회를 이끄는 핵심 인프라인 네트워크 관련 산업 현주소도 초라하기 마찬가지다. 최근 ICT 분야에선 독자 산업이나 개별 제품이 아닌 HW-SW-콘텐츠 간 선순환 체계를 통해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업들이 선두 그룹을 형성한다. 영역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정부 부처별로 추진하는 전략 간 선순환 체계를 정립하고 주도할 구심점이 필요하다. 각 산업의 육성정책을 균형적인 시각으로 조정할 새 거버넌스 정립이 필요하다.
스마트 디바이스 제품 분야에선 뛰어난 우리의 HW 기술력 덕분에 선두그룹을 거의 따라잡았다. 아쉽게도 혁신적인 제품 창출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ICT 산업 혁신 원천이 HW에서 SW로 이동하고 타 산업과 융합이 확산되면서 SW 및 콘텐츠 분야 고급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이들 산업의 유일한 인프라가 인적자원이기 때문이다. 새 기술과 시장을 열어 갈 열정과 도전정신을 겸비한 인재 양성 없이 새로운 ICT 생태계를 선도하기란 불가능하다.
한국 ICT 인력의 기술적인 우수함은 선진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과 전공학과를 안전하게 선택하도록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았으며, 기업과 연구소에선 도전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연구개발 활동과 거리가 먼 개발 프로젝트에 길들여졌다. 엔지니어들을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에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들로부터 기술혁신과 서비스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단기적인 산업진흥책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인력 양성과 R&D 등 다차원적인 대응정책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해결 방안이 마련된다.
SW 엔지니어를 시스템통합(SI)업체에서 밤새워 코딩하는 인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SW 산업을 SI산업과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 SW 산업진흥과 인력 양성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며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소통이 될 리 만무하다. SW 속성에 대한 이해를 같이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박정호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고려대 교수) jhpark@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