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나눠 먹는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한다. 식구가 되기 위해선 밥을 함께 먹어야 한다. `화목(和睦)`한 가족의 조건도 밥을 나눠 먹는 것이다. 한자 `화목할 화(和)`는 벼를 뜻하는 `벼 화(禾)`와 입을 뜻하는 `입 구(口)`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단어다. 화목하려면 벼 즉, 밥을 나눠 먹는 입이 모여야 한다는 의미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은 각자 일주일 내내 뿔뿔이 흩어져 지내며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다 함께 모여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밥을 같이 나눠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서로 아픔과 즐거움을 교감해야 소통이 이뤄진다. 밥을 같이 나눠먹지 않기에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 없고 결국에는 오해와 불신의 골이 깊어져 소통되지 않는 `불통(不通)`의 가정이 되는 것이다.
`밥통`의 건넴과 받음 없이 `소통`은 없다. 어렵고 힘들수록 밥을 나눠야 한다. 밥을 하는 사람의 정성과 밥을 먹는 사람의 감사함이 교차할 때 소통의 문은 활짝 열린다. 밥통을 주고받지 않으면 철밥통이 생긴다. 철밥통은 밥맛이 없다. 밥맛이 없는 사람과는 밥을 함께 먹기 싫은 법이다. 철밥통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뒷전으로 돌리고 우선 당장 급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이다. 철밥통은 `배고픈`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배고픈` 것에만 아파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아픔은 안중에 없는 사람이다.
철밥통은 왜 다른 사람이 배가 고픈지, 배고픈 사람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밥통만 챙기는 사람, 자기 밥에만 욕심을 내는 밥보 즉, 바보다. 바보는 지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철밥통은 소통보다는 불통을 삶의 미덕으로 삼는 바보다. 불통되니까 철밥통끼리 서로 호통(號筒)치면서 가슴에 상처를 주는 감정적 언쟁을 계속한다. 이제 호통은 분통(憤痛)과 울화통으로 변질돼 화통(和通)할 수 없는 영원한 불통 관계로 전락한다. 불통의 원인은 주로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네 탓이오`가 아니라 `내 탓이오`라고 생각하자. 나를 먼저 바꿔야 남이 바뀐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