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미디어 예술로 대접받기 시작하면서 게임도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걷기 시작했다. 천대받던 서브컬처에서 사랑받는 대중문화로, 다시 놀라운 예술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콘텐츠피플] 이은석 넥슨 실장](https://img.etnews.com/photonews/1202/240859_20120202164307_440_0001.jpg)
게임 개발자들이 참여한 실험적 기획전을 전시 중인 313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이은석 실장을 만났다. `보더리스(Borderless)`가 테마인 이번 기획전은 넥슨의 게임 `마비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 10여 편이 전시됐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총괄 디렉터인 이은석 실장을 비롯해 김호용, 한아름, 이진훈, 김범, 이근우 등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소속 개발자 6인이 참여했다.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실장은 이번 작업 전까지 단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공대에 디자인학과가 설치된 학과 특성상 그는 아티스트보다 엔지니어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높았어도 순수 예술로서 창작활동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애니메이션학과나 디자인학과 출신은 있어도 순수 미술 전공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번 전시 전에는 붓을 단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처음 전시회 제안을 한 것은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였다. 김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만큼 전시에 관심이 많았고 `엔엑스 아트 랩`이란 실험적 아트 프로그램을 사내에 신설했다. 이번 전시에도 작업 진행부터 갤러리 오픈 전날 최종 리허설까지 직접 챙겼다.
지난해 여름 엔엑스 아트 랩 1기가 출범됐고, 이 실장이 리더를 맡아 방향을 조율했다. 삼성동 회사 주변에 작은 공방을 마련했다. `개발자` 이름표를 떼고 `작가`가 됐다.
“멤버들에게 무엇보다 작가로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게임 개발에서는 하기 어려운 `고집`을 담아야 한다고요. 게임개발은 공동 창작 작업이기 때문에 양보와 조율이 더 중요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선에 대한 재치있는 표현들이 전시됐다. 캔버스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확장했다. 회화, 조각 같은 순수미술작업부터 키넥트, 픽셀아트, 컴퓨터 및 신형 디스플레이가 총동원됐다. 단 한 번도 실재하지 않았던 판타지 세계 속 인물들이 유화물감으로, 조각으로, 설치 작품으로 생생하게 뛰어나왔다. 반면 실재하는 사람이 카메라와 동작인식 시스템 키넥트를 통해 가상세계 속 `아바타`가 됐다.
“우리는 그동안 가상세계 미술작업을 해왔던 사람들인데 오프라인으로 그 가상세계의 아트작업들을 재현하는 데 의미를 뒀습니다. 전시라는 것은 그 당시에만 보고 느낄 수 있고 디지털처럼 무한 복제가 불가능한 것에 그 의미가 있죠.”
붓이나 물감이 필요 없는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지만 디자이너의 수작업은 실재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다. `버추얼 핸즈`라는 작품에서는 투명한 디스플레이 위로 디자이너의 손이 움직이면서 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작품 곳곳에 실재와 가상이 겹치고 경계가 흐릿해졌다. 무엇이 게임이고 무엇이 예술이냐는 질문도 모호해졌다. 그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이 실장은 `작가`라는 전시회 표현이 어색하다고 털어놓았다. “멤버들이 직장인으로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그래서 다시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해요.”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