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민지 IT생태계] <하> 경쟁과 견제의 룰 만들자

“애플과 구글에 대항할 독자 운용체계(OS)를 만들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는 것이다.”(SW업체 사장)

“우리나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정부 관계자)

“안 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대기업 임원)

전자신문이 `신식민지 IT생태계` 시리즈로 연재하자 나온 각계의 `대안 부재론`이다.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는 생태계에 종속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대세를 이뤘다. 전문가 집단도 지난 2009년 `아이폰 쇼크` 이후 2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한 생태계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인재를 키우고, 사회와 기업 문화를 바꾸는 `백년대계`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한계론`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산업과 문화 종속의 대책은 고사하고 문제의식조차 사라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병기 서울대 교수는 “남이 열심히 하는 거 따라가는 것은 쉬운데 분명히 한계점이 있다”며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듯, 생태계를 이루는 플랫폼 사업 역시 방향을 잘 잡고 도전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생태계 종속에서 벗어날 해법으로 `경쟁`과 `견제`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은 구글과 애플의 독과점 피해에서 벗어날 `대항마`로 경쟁하고, 정부는 이들의 횡포를 견제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중걸 로아컨설팅그룹 연구원은 “우리기업이 당장 독자 OS를 만들자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안드로이드 OS를 활용한 `서비스 플랫폼`을 강화하는 전략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이미 SK텔레콤의 `티스토어`나 삼성전자의 `삼성앱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이 지난해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해 스마트패드를 출시했지만 아마존 독자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으로 독립한 사례도 있다. 소니도 최근 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의 영화·게임 콘텐츠를 활용해 독자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출범 100일 만에 우리기업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K앱스`를 재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앱 개발사 역시 멀티 플랫폼 전략으로 구글과 애플을 견제해야 할 수 있다. 최근 급부상한 `페이스북 마켓`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경쟁을 유도하면서 선두 플랫폼 기업의 횡포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앱 개발사 한 개발자는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 마켓의 높은 수수료 횡포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차세대 인터넷 표준인 HTML5 방식의 웹앱을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지는 앱스토어 30% 수수료에 반발해 직접 `웹앱`을 만들어 인터넷 주소만으로 접속해 뉴스 앱을 이용하도록 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도 최근 모바일앱을 HTML5 방식으로 바꿔 플랫폼 간 호환성 확보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독립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정부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 마련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당장 애플이 최근 국내 모바일 메신저업체의 업데이트를 거부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불공정 거래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다. 학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플랫폼 중립성의 가이드라인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인센티브 약해지면 자기 유리한 대로 정책을 바꾸며 오히려 생태계 규제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며 “시장 피해가 없는 차원의 모니터링 시스템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민관이 공동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표준특허권자가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에 특허 사용을 가로막을 수 없는 프렌드(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항과 같은 국제 협약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엄정한 변리사는 “플랫폼 제공업체와 이용업체는 관계는 사적 계약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어서 국제협약을 따르는 표준특허의 프렌드 조항과 같은 것으로 강제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며 “국제적 공감대와 글로벌 차원에서 감시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이 또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는 만큼 만약 규제에 나선다면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한세희·황태호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