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펴냄
책은 많습니다. 일 년에 신간만 3만 종 넘게 나온다니 그럴 만하죠. 좋은 책은 그보다 적습니다. 좋은 책이라 함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읽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은 더욱 적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책, 그거 쓰기 쉽지 않고 책은 많으니 그런 책을 만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 할 만합니다.
이 책이 바로 읽는 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우습고, 따습고 그런 책입니다.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지은이가 사회의식이 충만한 작가라고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물론 사회의식이 충만한 작가라 해서 좋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책은 라면만 먹고 지리산 종주를 하다 해발 1700미터에서 고산병에 걸린 것 같다고 호소하면서 “심해어족이냐”는 비아냥에 “안 그래도 어제부터 하반신에 하얀 비늘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이러다가 전생의 그 생물(인어공주?)로 환원하는 것 같아”라 대답하는 지은이가 지리산의 친우들에 관해 쓴 에세이입니다.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지리산에 살게 된 뒤 그게 자꾸 없어져 시를 못 쓴다는 버들 시인, 낙장불입 시인 등에 관한 스케치지요. 그런데 이게 작품입니다. `잠잠산방`에 사는 낙장불입 시인의 친구 최 도사를 볼까요.
주차관리 요원으로 연봉 200만원이라는 그는 가끔 자장면도 사먹는다고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 시집을 낸 버들치 시인이 한 턱 낸다고 그를 식당에 데려갔답니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던 최 도사, 의기양양하게 “난, 사리!”라고 외쳤다네요. 육개장, 냉면 다 젖혀놓고 말입니다. 당황한 버들치 시인에게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사리가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난 사리야”라고 우기더라나요.
그러면서도 “보수가 뭔 줄 아니? 잘못된 거 수리하는 게 보수야. 진보는 뭔 줄 아니?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야”란 명언도 한답니다. 진짜 도사 같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갈피마다 숨어 있는 책, 읽고 나면 어째 지리산으로 나들이 가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 책 속의 한 문장: 지금 마을 사람들이 아부지 낭구 심는 거 보고 뭐라 캐도 너거는 신경쓰지 말그래이. 봐라. 아부지가 매일 낭구를 심으면 아부지가 죽기 전에 가져갈 것은 실은 아무것도 엄다. 그러나 너거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여기서 수많은 것들을 얻을 끼고 너거들이 낳은 아그들, 그러니까 내 손주들 대에는 이 산의 나무만 가지고도 그냥 살 날이 올기다. 아비의 생각은 마 그렇다
자료제공: 메키아 (www.mek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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