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의 국정철학을 세워야 합니다. 확실한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시장과 산업에 분명한 메시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임주환 고려대 교수(63)는 지금 정권에서 IT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배경을 철학 부재에서 찾았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에서 IT에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산증인이다. 독일에서 박사 취득 후 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29년 동안 연구개발 한 우물만 고집했다. 2002년 ETRI 원장, 2007년 한국케이블연구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고려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바른 과학기술사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제안한 차기 정부 개편안에 관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 자문을 요청할 정도로 거버넌스 분야에 통찰력을 인정받고 있다.
임 교수는 IT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힘 줘 말했다. “IT는 미래 먹을거리입니다. 증기기관 개발만큼이나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모든 산업이 IT로 새롭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로 바라보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는 기술로 보는 편협한 시각이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IT 주도권을 놓친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현 정권에서 IT를 보는 단편적인 사례가 일자리입니다. IT가 일자리를 줄이는 주범이라는 선입관입니다. 그러나 IT로 한물간 일자리가 없어지는 대신에 두세 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보고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국내에 대졸 청년 실업자만 어림잡아도 30만명입니다. IT는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입니다.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산업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임 교수는 “지금은 사회경제적 변혁기로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패러다임이 바꾸고 IT가 소용돌이 중심에 있다”며 “시대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는 게 일자리·복지·안보와 같은 국가 현안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이 `180`도로 바뀌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산업 중심, 제조업 사고방식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대증적인 정책밖에는 나올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 분야인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IT관련 업무가 방통위를 포함해 여러 부처로 갈라지면서 연구개발 분야도 `헛바퀴`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체신부·정통부와 같이 책임지고 밀어붙이는 독임부처가 없어지면서 이전만큼 개발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TDX교환기·CDMA·DMB와 같은 원천기술을 확보하면서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신기술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전체 자금은 줄지 않았지만 나눠 먹기 형태로 수백개 과제로 쪼개지면서 매년 예산만 낭비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버넌스 논의가 과거 `정보통신부 회귀`라면 문제가 있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임 교수는 “과거 정통부를 아우르면서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며 “차기 거버넌스는 정통부, 과기부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아예 원점에서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