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겉돌고 목표 없는 땜질식 처방만 있다.`
2008년 현 정부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 출범 이후 지난 4년에 대한 한 업계 전문가의 평이다. 현 정부 ICT 거버넌스 체제는 4년 내내 `정책 실패` `철학 부재` `균형 상실` 등 비난에 시달렸다. 현 거버넌스 체제의 최대 목표였던 ICT 융합화 정책마저도 아이폰 쇼크가 몰고 온 스마트 열풍 앞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뚜렷한 정책 목표 없이 뒤처진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따라가는 데만 급급했다는 평가다.
◇정책 실패=2008년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진 ICT 거버넌스 개편의 핵심은 융합이었다. 정부는 ICT 산업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타 산업과 융합을 꾀했다. ICT를 타 산업 발전을 돕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했다.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관련 기능 상당 부분을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분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가 꾀한 융합형 ICT 거버넌스 개편은 장점이 아닌 약점으로 작용했다. 2009년부터 우리나라를 강타한 스마트 열풍이 가져온 또 다른 형태의 융합을 예상치 못한 탓이다.
애플, 구글 등 해외기업이 ICT를 기반으로 금융·콘텐츠·교육·서비스 산업과 융합하며 새로운 스마트 시대를 열어갈 동안 우리나라는 산업 현장 정보화 수준 융합에 머물렀다.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자 이른바 아이폰 쇼크가 국내 ICT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단말기 업체는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줬고 통신사업자는 갑작스러운 주도권 교체에 당황스러워했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자 정부는 또다시 뒷북 행정을 반복했다. 해묵은 과제인 소프트파워 강화가 다시 화두로 등장했다. 스마트 융합 시대를 선도하기보다는 뒤늦게 대응정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했다.
기업 비즈니스 현장은 새로운 융합형 서비스 출현으로 급변하는데 정부 정책과 제도는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뉴미디어 분야처럼 모호한 제도로 인해 사업자 간 분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제도에 발목이 잡혀 빠르게 시장을 넓혀나가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과거 우리나라 성장을 이끌었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해야 하지만 결국 패스트 팔로어로 회귀했다.
◇철학 부재=미래 예측과 거버넌스 개편 실패 배경은 정책 철학 부재 탓이 크다. 황중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부회장은 “과거에는 ICT가 정책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었는데 현 거버넌스 구조에서는 목적 부분은 소외된 채 수단으로만 여겨져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ICT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제, 전체 산업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는 파괴적 동인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ICT 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엄청난 오판이었다. 타 산업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ICT 시장을 감안하면 안일한 접근이었다.
휴대폰과 반도체 등 일부에 편중된 불균형한 산업 구조, 10년 넘게 외쳤지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소프트웨어 경쟁력, 어느 나라도 부러워 할 초고속통신망을 갖췄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외산장비 일색인 인프라 구조 등을 감안했다면 ICT 산업에 더 힘을 실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각 부처에 ICT 기능을 녹여 넣겠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었다.
철학 부재는 각 부처가 제 역할을 못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2008년 출범 당시 새로운 융합형 기구로 주목받았던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중심위원회`라는 비아냥 속에 정책 균형감을 상실했다. 방송통신 융합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사전 차단하지도 못했고, 사후 정상화에도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안정상 민주통합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중심축을 이뤄야 할 방송통신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적인 역할에 머무는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등한시하면서 과학기술인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지식경제부에 포함된 소프트웨어 육성 기능은 에너지, 조선, 철강 등 다른 산업기능과 어울리지 못하며 수많은 기능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모두 ICT에 관한 정책 철학과 비전을 제대로 수립하거나 공유하지 못했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황 부회장은 “ICT 산업 특성상 이를 단순히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스마트 시대가 부상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콘텐츠·플랫폼·터미널·기기(CPNT) 산업 육성 차원에서 흩어진 거버넌스 기능을 효율적으로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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