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학생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일본 대학이 있다. 공용어는 아예 영어다. 학부나 학과 구분도 없다. 전공과 상관없이 함께 토론하고 연구한다.
기존 일본 대학의 상식을 모두 허문 주인공은 일본 최남단 섬에 새로 문을 연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OIST)다. 유례를 찾기 힘든 OIST의 혁신이 일본 열도는 물론이고 세계 과학기술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OIST는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하면서 새로운 과학기술의 메카를 꿈꾼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2/27/250656_20120227143607_131_0001.jpg)
OIST는 대학원만 있는 대학교다. 모든 제도와 시설은 연구에 맞춰져 있다. 오키나와에 터를 잡고 지난해 11월 개교했다. 올 가을 20명 수준의 학생이 처음 들어올 예정이다. 학생 수가 조금 적지만 여기까지는 기존 대학원대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OIST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인재다. 교수와 연구원 절반 이상이 외국인으로 채워졌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이나 외국인이나 일정 수준의 학문적 성과와 연구 열의만 있다면 입학 가능하다. 학내 표준어는 영어다.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기술 대가를 교수로 초빙했다. 세계 물리학의 대가 스탠퍼드대학 조너선 도판 교수가 학장으로 부임했다. 노벨 의학상 심사위원인 스웨덴 카롤린스 연구소의 울프 스코글랜드 교수도 합류했다. 47명의 교수 중 3분의 2가 외국인이다.
젊은 교수에게도 동등한 환경을 제공한다. 뇌신경 분야에 새로 임용된 스기야마 요코 교수는 대가들과 마찬가지의 연구원과 시설을 지원받는다. 연공서열의 일본 문화를 일축하고 미국 대학 시스템을 적용한 사례다.
학부나 학과도 없다. 신경과학을 비롯해 생태학이나 계산과학 등 45가지 연구 분야만 있다. 보통 대학원 재학 기간은 2년이지만 OIST는 5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 초반 2년 동안은 3가지 분야에서 골고루 공부하고 지도교수를 정한 뒤 3년을 더 연구하는 방식이다.
첨단 연구 시설과 장비는 특정 연구실에 묶여 있지 않고 함께 쓰는 공간에 마련돼 있다. 도판 학장은 “과학기술의 중요한 발견은 종종 학문과 학문의 경계에서 태어난다”며 “세계 유수의 대학은 학과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새로운 대학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예산은 특별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전액에 가깝게 부담한다. 지난해 119억엔(약 1655억원)이 지원됐다. 연구 성과가 나오면 민간 투자나 기부금 등으로 재정을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스코글랜드 교수는 “스웨덴에선 정부의 관료적 예산 배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오키나와에서 마음껏 연구해 신약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스코글랜드 교수는 세포 관찰에서 획기적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OIST는 이미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경제 주간지의 대명사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OIST를 소개했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 대학이라는 목표를 세운 OIST의 혁신은 이제 닻을 올렸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