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파크 지음, 이덴슬리벨 펴냄
동굴에서 탁자 하나만 소유하고 사는 노인이 어느 날 도둑 때문에 잠이 깹니다. 노인이 말하죠.
“드릴 게 너무 없어서 미안합니다. 오늘 밤 달이 참 아름답네요. 저걸 드릴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드렸을 겁니다”라고요.
![[e북 초대석] 그 슈퍼마켓엔 어쭈구리들이 산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2/29/251636_20120229142449_812_0001.jpg)
무슨 선문답이냐고요. 선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년 동안 영국 국교회 신부로 일한 이가 50이 되어 환속해 슈퍼마켓에서 찾은 삶의 의미를 기록한, 이 에세이집의 한 대목입니다. 소동이 두려워 도둑을 못 본 체하는 슈퍼마켓의 단면을 그린 이야기에 나옵니다.
책의 원제는 `슈퍼마켓 진열대에 쌓인 삶의 의미를 나는 어떻게 발견했나`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번역판의 제목이 정말 `명작`입니다. `어쭈구리`의 사전적 풀이는 `아주`라는 뜻의 감탄사라지만 여기선 같잖은, 또는 변변찮은 사람들을 뜻하는 명사로 쓰였습니다.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더 번듯한 직장으로 떠나고 말거야”라고 다짐하는 이민자, 사업실패자나 해고자 등 변두리 인생들과의 이야기니 제목이 딱 아닙니까.
구질구질하거나 서 푼짜리 깨달음을 담았겠다고요? 지레 짐작해서 치울 책이 아닙니다. 애잔하면서도 우습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삶의 단면과 교훈이 담긴, 아주 괜찮은 책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동료 모하메드가 지은이에게 묻습니다.
“하루 정말 다섯 번씩 섹스 해야 해요?” 결혼을 앞둔 그는 그게 큰 걱정입니다. 지은이가 대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하던 그는 두려움에 당당히 직면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곤 말하죠. “못할 거 뭐 있어요. 문제없어요. 나 점심 시간에 집에 다녀옵니다.” 그가 집에 왜 가는지, 가서 뭐 했는지는 안 나옵니다.
신랄한 비유도 있습니다. 각국에서 온 직원들이 종교 문제로 논쟁을 벌입니다.
“난 힌두교의 많은 신들이 좋아. 어릴 때부터 알았거든.”
누군가 대꾸하죠. “난 어릴 때부터 습진에 대해 잘 알았지. 그렇다고 그걸 계속 달고 다니길 바라는 건 아냐.”
사제복을 벗고 취업하려 애쓰던 시절, 지은이는 거듭 퇴짜를 맞습니다. 그 때 그러죠. “일단 나쁜 소식을 듣고 그 충격을 이겨내면 내적 자아는 회복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고. 어릴 적 축구선수 조지 베스트를 꿈꾸던 그가 슈퍼마켓 제빵 코너에서 빵 굽는 일을 하게 되자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고 토로합니다. “시장에 부처가 있다”란 말이 있죠. 지은이도 슈퍼마켓에서 깨달음을 길어낸 듯합니다. 옛말 그른 게 하나 없다니까요.
■책 속의 한 문장:슈퍼마켓에 취직하기 전에 근 20년 동안 나는 영국 국교회 신부였다. 하지만 정말 몰라서 묻는데 둘 사이의 차이가 있는가? 역할은 바꿀 수 있지만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실제로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은 어딜 가든 자기 자신을 데리고 다니고, 그에 맞추어 삶을 끌어안거나 물리쳐버린다.
자료제공: 메키아 (www.mek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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