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년] 한국에 찾아온 기회…지난 1년 국내 산업계 영향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우리나라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지난해 전년 대비 70억달러 이상 크게 줄었다. 대일 무역적자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부품소재 산업에서 일본기업들이 되레 한국산 제품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엔고의 여파가 가장 큰 이유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자국내 수급 차질이 계기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작년 대지진은 국내 산업에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했다. 우선 가장 큰 반사 이익을 본 산업은 정유와 자동차다. 국내 정유업계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제 유가 상승 효과로 매출액과 이익 모두 대폭 상승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현대차 판매 호조와 더불어 일본 자동차 업계 생산 피해가 겹치면서 수혜를 받았다.

전자산업에서는 첨단 부품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일본의 아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기회가 마련됐다. 세트업체들이 과거 일본산 부품소재에 의존했던 공급선을 국산화하려는 노력이 뚜렷해진 덕분이다. 스마트폰 부품인 쏘(SAW)필터 전문업체 와이솔은 지난해 869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그동안 세계 쏘필터 시장을 무라타·TDK-EPC 등 일본업체들이 장악해 왔으나 대지진으로 공장 가동에 타격을 받으면서 반사 혜택을 얻은 것이다.

카메라 모듈용 이미지 센서(CIS)와 이미지신호프로세서(ISP) 등 핵심 부품도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이들 부품은 소니 등 주로 일본산 제품에 의존했지만 지난해 이후 삼성전자는 자사 시스템LSI 제품으로 상당부분 대체했다.

지금까지 일본을 감히 넘보지 못했던 첨단 부품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중저가 부품에만 안주했던 커넥터 시장이 단적인 예다. 우주일렉트로닉스·연호전자·씨엔플러스 등 국내 전문업체들은 0.3㎜ 이하 모바일용 협피치 커넥터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한무근 씨엔플러스 사장은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미국·일본 업체들이 선점한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면서 “하지만 일본의 아성이 흔들리면서 우리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터치스크린패널(TSP) 핵심 소재인 투명전극(ITO) 필름과 원단, 안테나 소재인 자성체를 국산화하려는 노력도 강하다. 이들 소재는 거의 전량 일본에 의존해왔던 품목들이다.

일본 대지진은 경쟁 관계였던 국내 산업에 수혜를 준 것과 동시에 양국간 새로운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본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소재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도레이는 구미에 5년간 1조원 규모 투자로 탄소섬유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스미토모는 국내 자회사인 동우화인켐을 통해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일체형 터치 신규 투자에 2800억원, 삼성LED와 합작으로 발광다이오드(LED) 사파이어 기판 라인에 800억원을 각각 투입키로 하는 등 일본 소재기업들의 한국행은 러시다.

지난해만 일본 소재기업들이 발표한 한국내 대규모 투자 건수만 9건, 금액으로는 2조원을 웃돈다. 일본 기업들로선 생산 기반 다변화와 한국 고객사들과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도레이첨단소재 관계자는 “비단 지진 사태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전략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