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방통위, 앞을 보자](상) 방송통신 정책 철학 시급

이계철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9일 취임했다. 야권의 반대가 있었지만 예상대로 큰 무리 없이 청문회를 거치고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그러나 앞길은 녹록지 않다. 1기 방통위를 마감하고 3년 임기로 지난해 2기가 깃발을 올렸지만 정권 말기를 고려하면 실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는 불과 1년 안팎일 수 있다. 남은 기간 동안 방통위와 산업계를 추스르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계철 방통위원장을 중심으로 `2.5기 방통위`가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9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아든 이계철 위원장은 곧바로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 내정된 이후 줄곧 방통위 직원들과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직간접적인 업무 보고를 받았으니 이계철 체제는 이미 출범했던 셈이다.

방통위는 2008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한 새로운 거버넌스로 간판을 내건 이후 4년 만에 새 위원장을 맞았다. 산업계에서는 주무부처 수장이 바뀌자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정권 말 레임덕과 선거시즌 등 정치적인 이슈에 묻혀 `식물 방통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정치색이 옅은 테크노크라트가 취임하면서 중심을 잃었던 방통위가 오히려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어려우면서 껄끄러운 시기에 방송통신 수장을 맡은 이계철 신임 위원장도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전임 위원장의 그림자를 지우고 신임 위원장의 확실한 색깔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4년 동안 방통위는 원했건, 원치 않았건 현 정부와 한 몸이었다. 최시중 위원장은 방송통신 융합, 공정성과 독립성을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지만 정치권의 입김과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상임위원회 주요 정책 결정은 합의제가 무색할 정도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렸다. 자연스럽게 위원장 중심으로 권한과 책임이 쏠렸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기 일쑤였다.

주된 관심사도 IPTV, 방송법, 종합편성 채널 등 방송 쪽이었고 대부분 사안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통신은 뒷전이었고 산업 진흥은 찬밥이었다. 때맞춰 터진 구글의 부상, 아이폰 쇼크와 맞물려 결과적으로 IT 경쟁력을 오히려 후퇴시켰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 마디로 4년 동안 방통위는 정책 부서로서 철학은 없고 그 자리에 정치색 짙은 위원장만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었던 방통위를 제대로 세우는 첫 단추는 확실한 정책 철학을 수립하는 일이다. 산업계에서는 방통위가 표류한 결정적 이유로 현저하게 떨어진 정책 비전 능력을 꼽았다. 과거 정통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지만 정부가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결국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뿌리가 됐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집권 말기에 중장기 비전까지는 힘들겠지만 분명한 정책 원칙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바뀐 통신 패러다임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어떤 정책이 유효할지 우선 과제로 고민해야 한다. 방송에서도 지상파와 케이블과 콘텐츠 사업자의 새로운 위상 정립, 경쟁과 공공 논리를 어디까지 적용할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방통 융합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책 철학이 확실해야 세부 정책과 실행을 흔들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다행히 이계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세상이 기가바이트 속도로 바뀌는데 정책이 메가바이트 속도로 따라간다면 결코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며 “격변기일수록 정부 리더십이 중요하고 ICT 분야에서 변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스마트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