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올해 들어 갑자기 지상파방송사 주변에서 이상한 얘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문 수준이지만 그럴 듯하다. 연말 아날로그 방송을 전면 중단하고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는 정부의 디지털전환 방침이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요지는 이렇다. 4월 총선 이후 지상파방송사들이 디지털 방송 전환 불가를 선언할 것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디지털전환율이 낮고 홍보가 안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아날로그 방송 직접 수신계층에 영세민이 많아 난시청 해소도 어렵고 시청 불가 대란마저 일어날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정말 그럴까. 또 지상파방송사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우선, 디지털전환에 따른 아날로그 주파수 회수 문제다. 그동안 지상파방송은 14~60번 채널(470MHz~752MHz))과 임시 디지털 방송용 채널 61~69번(752~806MHz)를 사용해 왔다. 연말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면 이중 52~69번 채널(698~806MHz)을 반납해야 한다.
주파수 회수를 최대한 늦춰보겠다는 계산이다. 겉으로는 송신소간 간섭현상 등을 이유로 디지털전환 시점을 늦추고 주파수 회수 날짜를 연기하겠다는 것이다. 3D·초고선명(UHD) TV를 위한 용도로 남겨둬야 한다는 논리도 작용한다.
방통위는 아날로그 방송 주파수로 사용하는 700MHz 대역을 통신용으로 전환 재배치하려 한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곱게 보아 넘길 리 만무하다. 당장 디지털전환을 하려면 대규모 투자도 속행해야 한다. 카메라·부조정실 등 모든 하드웨어 설비와 소프트웨어 기기를 교체해야 한다. 방송 기술직들의 일자리 문제도 예외일 수 없다.
다채널서비스(MMS)도 있다. 방통위는 케이블TV와 종편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MMS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주파수 문제와 함께 이슈화해 대국민서비스의 다양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4월 총선 이후 다수당을 상대로 전략적 딜을 통해 디지털 전환법을 개정하거나 밀어붙일 명분을 챙기겠다는 심산은 아닌가.
정치권으로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누가 다수당이 되든 방송사가 자진해 중립 내지는 호의적인 보도를 약속하면 주파수 할당과 MMS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식이다.
꼼수가 아닐 수 없다. 결국은 시청료만 올려놨다. 지난해 지상파방송사들은 전년에 비해 6.7%(1477억원) 가량이 늘어난 2조356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방통위 일부와 정치권이 가세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방송사 주변에선 디지털전환 불가설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온다.
자사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우리와 경쟁 환경에 있는 국가들은 저만치 앞서간다. 디지털TV 시장을 주름잡는 우리나라 제조사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콘텐츠 제작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려스럽다. 정부도 대국민 약속을 해놓은 상황에서 지상파방송사 주도로 디지털전환 불가 선언이 떨어진다면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경북 울진, 전남 강진, 충북 단양, 제주에서 디지털전환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저소득층 지원책도 시행하는 상황이다.
꼼수들의 세상이다.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머지 않았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플랫폼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간 경계와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케이블TV사업자의 힘도 세지고 있고, 종편사업자들도 있다. 국민들의 의식도 깨어나고 있다. 결국은, 꼼수는 꼼수로 드러나고야 마는 법인데···.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