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나는 타이틀이나 직함으로 자신을 대신하는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나 한양대학교 교수 유영만처럼 이름 석자 앞에 붙어 다니는 상징적 표현들이 그 예에 해당한다. 지식생태학자도 한양대학교 교수도 `유영만`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이게 마음에 안 들어서 지식산부인과의사나 학습건강전문의사 유영만으로 표현해도 여전히 인간 유영만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주지 못한다.
화장(化粧)으로 가려진 내 얼굴, 명품으로 치장(治粧)된 내 몸, 다양한 수식어로 위장(僞裝)된 나, 때와 장소에 따라 수많은 얼굴로 포장(包裝)되는 내 모습, 이렇게 수많은 허식과 관념으로 가장되는 내가 평생 내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점차 사장(死藏)되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장하지 않는 맨 얼굴, 치장하지 않는 맨몸, 위장하지 않은 본 모습, 포장되지 않은 본질이다. 그렇다면 나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를 찾아 나서는 여행, 출발은 맨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가식적 포장들을 걷어내고 알몸으로 드러내야 한다. 나를 만나는 길, 그 길이 바로 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길이다. 나의 `작품`이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철학과 혼을 불어 넣어야 한다. 나의 철학과 혼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명품`을 찾기 위해 `발품` 팔아서 한평생 헤매고 돌아다니지만 정작 내 안의 `성품`을 드러낼 `작품`을 찾아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행은 한 번도 못하고 죽어가는 경우가 많다. `명품`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명품`은 `발품` 팔아서 찾는다면 결국 `반품`할 수도 없는 `소품`밖에 되지 않는다. `명품`은 품격이 그대로 담겨진 나의 `작품`에서 비롯된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의 `작품`은 적나라(赤裸裸)한 나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은 나를 포장했던 온갖 허례허식과 존재의 외양을 둘러싸고 있는 가식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벗겨낼 때 기존의 문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벗어야 나를 만날 수 있고, 벗어야 지금 여기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