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순 조달청 국제물자국장 kchang1@korea.kr
전자 조달이 부패 고리를 원천 봉쇄하고 예산집행의 낭비적 요소들을 걸러내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조달과정의 비리가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제 신흥국에서 전자조달의 도입이 시급하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신흥 개발국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주의 선진국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자 조달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선진국이라 해도 전자 조달 시스템의 완성도나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들의 전자조달은 입찰 공고와 입찰, 낙찰자 선정 결과나 공공 입찰 정보를 공개하는 정도의 수준에 그친다. 또 중앙 정부, 지방 자치단체, 공공 기관 등 조달 단위마다 각각 별도의 시스템을 사용해 상호 연계나 자료의 공유가 원활하지 못하다. 전자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구매 단위별로 필요한 물건을 `알아서` 구입 하는 분산 조달의 관성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조달 단위 간 네트워크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특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역내(域內) 공공 조달 시장을 시스템으로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역별로 서로 다른 비즈니스 환경과 법령, 시스템에 적용된 기술 차이 등으로 시장 통합은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입찰 공고에서부터 계약과 대금 지급에 이르는 정부조달 전 과정이 온라인에서 막힘없이 해결되고 있다. 중앙 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와 공공 기관도 같은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별도로 조달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도 일부 있지만 시스템 간 연계로 네트워크는 항상 열려 있다. 이 때문에 조달 업체는 어느 시스템에 접속해도 다른 시스템으로 접근 할 수 있다. UN등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전자 조달을 수준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상위`로 평가 하고 있는 이유다.
유독 우리의 전자 조달이 독보적인 이유는 중앙 조달을 채택해 왔던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 조달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뿐 아니라 법령·관행과 같은 조달환경 표준화가 전제 돼야 한다. 사업자가 공공 기관 입찰에 참여 하기 위해 입찰 등록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중앙 조달체제에서는 어느 구매 단위에서나 비슷한 절차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참여가 쉽다. 반면, 분산 조달을 채택한 경우에는 다수 기관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준이나 기준이 없다. 구매 단위별로 서로 다른 절차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자 조달 시스템을 도입한다 해도 구매 단위간 네트워크를 열고 절차를 표준화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중앙조달환경을 토대로 전자조달의 유용성을 100% 활용하고 있다. 표준화된 전자 조달 플랫폼 내에서 각 조달 기관은 `알아서` 조달하는 분산 조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대로 분산 조달을 채택하던 나라들은 조달 혁신의 수단으로 집중 구매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국가 재정 악화가 이슈화 되면서 집중 구매 방식의 채택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분산 조달이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중앙 조달 둘 다 장단점이 있다. 다만, 전자 조달 확산과 국가 재정의 효율적 집행이 중요시 되고 있는 최근 흐름 속에서는 중앙 집중 구매 방식이 유리한 것으로 본다. 똑같은 정책도 변하는 환경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 `귤화위지(橘化爲枳)`처럼 객관적인 내용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환경과 문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