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정의 그린로드]생명 위협하는 원자력 안전 불감증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원전 1호기 전원공급 중단 사실을 한 달 넘게 은폐한 사실을 두고 우려 목소리가 많다. 다행히 고리 1호기는 정비를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고 12분 만에 끊겼던 전원이 복구됐다. 전원공급 중단 사고가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은 다시 한 번 증명됐고 덮어둔 사실은 세상에 드러났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전원이 12분 만에 복구됐고 정전에 따른 원전 피해는 없었다. 보직 해임된 당시 책임자가 전원공급 중단 사고를 덮자고 한 것도 별 피해 없이 지나갔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고에 당황했고 바로 전원이 다시 들어오자 보고할 시기를 놓쳤을 수도 있다. 원자력안전법에는 사고 발생 15분 이내에 원자력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됐는데 12분 만에 해결됐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9일은 공교롭게도 지식경제부가 원전 고장정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은 날이다. 원전 비판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3월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와 핵안보정상회의가 예정됐다. 9·15 순환정전 이후 동계피크 대책을 내놓은 상황에서도 지난 겨울 원전 고장이 잦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공급이 중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받아야 할 문책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당장 닥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고 있는 사실을 덮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원전 관련한 일은 매우 큰 사태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았다. 원전과 관련해선 사소한 문제라도 보고하도록 돼 있다. 기본적으로 전원공급이 끊어진 것을 즉각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도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홍 장관은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어떤 경우라도 즉각 통보하고 조치를 취하게 돼 있는데 통보를 안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며 “다시는 정신무장 해이로 인한 보고 누락 사태가 없도록 가일층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홍 장관도 이야기했지만 전원 공급이 끊어지고 이내 복구됐기 때문에 원전 안전에 문제가 없었다. 이번 일은 기계 결함보다는 원전에 근무하는 인력의 안전문화 불감증에서 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드러난다. 나사 하나 때문에 KTX가 멈춰서고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원전 고장 때는 볼트 하나 때문에 고장을 일으켰다.

비상발전기 관리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당시 외부전원은 계속 살아있었고 대체 비상발전기 가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원전 안전에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는 해명이 있었다. 전원이 복구됐기에 다행이지 비상발전기만 믿었다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국내에서 경험할 뻔했다. 당연히 가동되리라 믿었던 비상발전기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비상발전기 문제는 지난 9·15 순환정전 이후 관심을 끌었다. 비상발전기만 제대로 활용했어도 순환정전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발전기 가동에 필요한 기름 탱크가 텅 비었거나 조작할 사람이 없어 가동하지 못했다. 설치 의무규정만 있고 운영에 대한 규정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원전은 자칫 관리가 허술해지면 국민의 목숨과도 직결된다. 늘 조심하고 확인하는 습관만큼 중요한 덕목이 없다. 9·15 순환정전 때도 느슨한 보고 체계가 문제로 지적됐다. 불과 5개월 만에 보고의무는 힘을 잃었다. 그동안 문제가 있었지만 보고하지 않고 지나간 일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원전 안전도는 종사자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엄격하게 임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