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복기(復碁)의 ICT 정책학

천재적인 기사(碁師)일수록 복기(復碁)를 중요시 한다는 말이 있다. 바둑을 두고 난 뒤 두었던 대로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놓아봄으로써 다양한 전략적 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기는 진 쪽에서나 이긴 쪽에서 똑같이 중요하다. 주로 패자가 악수를 둔 것을 그대로 다시 두어본다는 점에서 패배의 원인을 따져보는 측면이 강하다. 다시는 그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지와 각오가 내포됐다. 이기는 쪽에서도 훌륭한 공부가 된다.

프로 기사들은 그래서 제자를 가르칠 때 복기를 가장 효율적인 지도법으로 택한다. 같은 대국을 수 십 번씩 복기해 본다는 프로기사들의 얘기가 허언이 아닌 이유다. 복기는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수학의 과정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단어는 과거지향적이나 의미는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정부 부처 개편 논의가 부쩍 많아졌다. 현 정부 들어 대부처 조직을 지향하면서 사라진 부처를 부활하자는 것이다.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가 대표적이다. 아예 중소기업부나 에너지부 같은 부서를 신설하자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문화미디어부 등 통합부처 얘기도 나온다.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이다. 그런데, 부처이기주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런 수준이라면 제도가 아니라 사람과 운영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였다 키웠다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양비론(兩非論)도 슬슬 고개를 든다.

복기가 필요한 이유다. 1차적으로는 그들의 논리에 대응하고 무엇이 부처 폐지의 동인으로 작용했는지, 어떤 인사들이 무슨 목적으로 부처 리모델링을 주도했는지 살펴야 한다. 혹시라도 정파성이 개입됐다면 그 근원은 무엇이고 또 정파성과 공적·사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볼 일이다. 개인적 감정 문제가 조직개편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정책적으로도 되돌아봐야 한다. 개편 당시의 부처와 이전 부처의 취지·당위성을 들여다보고 성과를 면밀해 따져봐야 한다.

방통위는 과연 정보통신기술(ICT) 주무부처로서 미디어융합, 통신융합의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소화해 냈는가.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또한 규제와 진흥·심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복기해봐야 한다. 지경부는 융합시대의 산업화를 지향하며 산업 활성화와 고용에 얼마만큼 역할을 해냈는가.

교육과학부 역시 교육과 과학의 시너지효과가 있었는가. 교육문제의 해결과 기초과학분야의 연구, 항공우주산업의 토대를 얼마나 닦았는지 봐야 한다. 국토해양부도 이질적 업무를 화학적으로 융합해 제대로 수행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콘텐츠시대의 소명을 다해냈는가.

그런데, 작금의 논의 수준이 모두 부처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미래비전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느냐는 별개다. 연구조직이나 프로젝트라는 것도 오십보 백보 수준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표가 된다면 부활이나 신설 공약을 서슴없이 토해낸다. 협·단체와 유력인사들의 모임에 부쩍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전문적인 검토나 연구수준은 모자라도 한참을 못 미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현 정부의 정부 개편 수준과 다를 바 없다. 국정 철학의 빈곤을 그대로 드러낸 현 집권세력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꼴이다. 논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다. 좀더 철저하고 더 처절하게 복기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국가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자는 것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