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말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가 예정된 시점이다. 새로운 디지털 방송 생태계 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최근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분쟁이 자주 목도되고 있다. 분쟁 과정에서 지상파 재송신 중단 사태가 발생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돼 왔다. 영문도 모른 채 재송신 중단 사태를 하릴없이 봐야만 하는 시청자로서는 이러한 풍경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인가.
재송신 분쟁의 표면적 이유는 저작권 사용료 지급 문제다. 지상파 방송사는 저작권법에 근거해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고 유료방송사업자는 그간의 지상파 난시청 해소 기여 등을 내세워 그러한 요구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저작권 사용료 관점에서만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사안은 매우 단순하다.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에 유료방송사는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고 재송신하고 저작권 사용료를 내지 못하겠다면 재송신을 못하게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이렇게 저작권 관점에서만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 국가의 지상파 재송신 제도는 사업자간 저작권 이익 다툼의 성격을 넘어서는, 공적 가치재인 지상파 방송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한다는 더 큰 사회적 가치와 연관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체제를 지닌 모든 국가에서 지상파 방송은 특별한 사회적 위상을 지닌다. 지상파 방송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제도들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가치재라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적 책무와 공익적 역할이 부여된다. 지상파 방송사 소유부터 프로그램 편성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적 규제가 따라다니는 것은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위상 및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상파 재송신 정책이 보편적 서비스 구현 차원에서 사회적 공공재이자 가치재인 지상파 방송의 시청권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현행 지상파 재송신 제도는 시청자들의 지상파 방송 시청권을 실질적으로 담보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며, 최근 재송신 분쟁 및 재송신 중단 사태가 잦은 것은 그러한 제도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와 같은 공영방송체제를 지닌 유럽연합 국가들이 이중 삼중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국민의 지상파 시청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공영방송사에 유효시청권 확보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난시청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상파 방송의 직접 수신 비율이 상당히 높다. 지상파 방송의 의무재송신이나 의무제공을 법제화함으로써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하는 가구들의 시청권 또한 보장하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는 방송사업자 간 사적계약 등의 이유로 지상파 재송신이 중단되거나 지상파 방송 시청이 불가능한 상황의 발생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도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우리 방송체제에 적합한 지상파 재송신 정책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관련 법제 및 제도들을 정비할 시점이다. 우선 지상파 방송사에 보편적 시청권 확보 책무를 명확히 부여하는 방향으로 방송법을 개정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수신 환경 개선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또 현행 방송법상 KBS1·EBS로 한정된 의무재송신 채널을 모든 지상파 방송 채널로 확대해 시청자의 지상파 방송 시청가능성을 확보토록 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재송신 대가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럽 국가들처럼 대가 거래를 금지시키거나 허용하더라도 규제 당국이 합리적 대가 수준을 사전에 설정해 분쟁 발생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상파 재송신 분쟁에 규제 당국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방송사업자 간 사적인 협상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공영방송체제하 지상파 방송의 위상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단순히 기업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송사업자가 아니다.
홍종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BK21사업단 박사후연구원 kangtow@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