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87> 약 빨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하고 기발한 내용의 만화, 그림, 영상, 언행 등을 접했을 때 쓰는 감탄의 표현.

마약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그런 희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 냈겠느냐는 뉘앙스다. 보통 마약하는 것을 속어로 `약 빤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변태적으로 구현한 경우에 주로 쓰이지만, 최근엔 단지 자기 맘에 안 드는 언행을 비난하는 말로도 쓰인다.

보통 `약 빨고 그린 그림` `약 빨고 만든 영상` 등 `약 빨고 ~한 ○○`의 형태로 쓰인다. IT 혁명으로 그림 영상 음악 등 창작 도구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인터넷으로 누구나 자기 창작물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엔 `약 빨고 그린 만화` `약 빨고 합성한 짤방` 등이 넘쳐난다.

인터넷 잉여(본지 2010년 10월 15일자 27면 참조)들의 놀라운 잉여력이 값싸고 손쉬운 인터넷 창작 도구와 만나면서 `약 빨고` 만든 창작물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유리가면` 풍의 순정만화 소녀 캐릭터가 `폐가 깨끗해지니 피부가 HD급이네` `소개팅 들어왔는데 아토피 도졌어` 등의 대사를 던지는 모 한의원 지하철 광고 시리즈는 네티즌 사이에서 `약 빨고 만들었냐`는 평을 들었다.

이후 이 광고를 제작한 광고사 직원이 해당 한의원에서 나오는 한약 팩을 마시며 작업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실제로 `약 빨고 만든 광고`임이 확인됐다.

몇해 전엔 인기 어린이 TV 시리즈 `텔레토비` 전 PD가 “제작진 일부가 마약을 먹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 폭로를 접하고 비로소 텔레토비의 내용과 전개를 납득하게 된 사람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 생활 속 한 마디

A: 약 빨고 만든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화끈한 아이디어를 내 봐요.

B: 254인조 걸그룹을 대대급 부대에 배치해 함께 병영 생활을 하는 리얼리티 쇼 어때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