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와 함께한 식사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 년에 사회공헌활동에 어느 정도 예산을 할애하는지 물었다. `얼마 정도 쓰고 있으며 주로 어떤 방법으로 쓴다`는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데 돌아온 질문이 살짝 충격이었다. A씨가 “기업이 성장해서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공헌 아니냐”고 반문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지출 비율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최근 방한한 세계 최고 부자인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회장도 같은 말을 했다. 슬림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말에 “기부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기업을 키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지출 비율은 우리나라(0.24%)가 미국(0.11%)이나 일본(0.09%)보다 높다. 전경련이 펴낸 `2010 사회공헌백서`를 보면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지출 금액은 2008년 2조1601억원에서 2010년 2조8735억원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거나 서비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해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닐슨이 실시한 `기업의 시민의식에 관한 조사`에서 글로벌 소비자 46%가 사회공헌 기업이 만든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대세가 됐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국제표준 `ISO 26000`에 개념이 명시됐다. 단순한 대세가 아니라 국제표준이 됐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연말연시 등 특정 시기에 하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자립 기반을 다지고 사회문제에 조금 더 접근해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 개념으로 진화한다. 기업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청소 기술을 가진 기업이 문화재를 정기적으로 세척하는 봉사를 한다든지 의료기기 기업이 병원과 손잡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는 식이다. 포스코가 2004년부터 시행해 온 `우수협력사와의 성과공유제`도 넓은 의미의 사회공헌활동이다.
기업을 더 키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기업이 가진 기술과 경험을 여러 계층에 확산한다면 기업에도 사회공헌활동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수익성 창출이라는 더 큰 선물로 돌아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