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월급날 돌아오는 것이 걱정인데 녹색경영을 하라는 요구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최근 만난 신재생에너지 중견기업 사장의 읍소다. 가뜩이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데 급하지도 않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라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에너지 분야에서 악전고투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국내 원전 추가 건설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정부당국은 `9·15 학습효과`로 지난 동계피크를 무사히 넘겼지만 3개월 앞으로 다가온 하계피크가 벌써 걱정이다. 이달 초 봄피크로 전력 운영예비력이 500만㎾ 이하로 내려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너지 현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왜곡된 전력요금 현실화·해외자원개발·배출권거래제·에너지믹스 등 굵직한 이슈가 산적했다. 특히 전력요금 현실화는 정치의 벽에 부딪혀 정부 당국자의 고민만 깊다. 정부과천청사 지식경제부 실내등이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이유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세계 석유파동이 발생하자 정부는 1978년 동력자원부를 신설했다. 석유와 광물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경제성장과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석유가격이 안정되자 업무와 기능을 상공자원부로 흡수해 1993년 폐지했다. 17년간 추진해 온 에너지정책이 오늘날의 에너지시스템으로 탈바꿈하는 노둣돌이 되었다면 틀린 말일까.
에너지와 해외자원개발은 보장성보험과 같다. 필요할 때 얻으려 하면 필요 이상의 힘을 쏟아야 한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얻으려 하면 부작용도 생긴다. 에너지 베테랑도 마찬가지다. 위기대처능력은 에너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때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9·15 정전사태 이후 정부의 전력수급 대처를 높이 살 만하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친 셈이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에게 에너지자원 확보 노력은 분명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자원개발 분야에 투자한 정부지원금에 비해 단기 성과물이 없다고 해서 결코 낭비는 아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10년 만에 미얀마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고,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볼리비아에 리튬전지공장을 설립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30시간을 비행해 해발 4000m 고지대인 볼리비아를 여덟 번 방문한 열정의 대가다.
4·11총선 이후 정부부처 업무조정개편설로 관가가 뒤숭숭하다. 차기 정부에 국과위와 같은 `에너지·자원개발위원회`를 둬야 한다는 소리도 흘러나온다.
우리 조상들은 1년을 위해 곡식을 심고, 10년을 준비하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를 양성했다. 이제는 에너지 백년대계를 봐야 할 때다. 그 중심에 녹색경영을 고민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마음까지 품을 에너지 베테랑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김동석 그린데일리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