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인터넷 30주년, 인터넷 역사 정립할 때

[ET단상]인터넷 30주년, 인터넷 역사 정립할 때

최근 서울대 전산학과 38동 건물이 헐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는 아연실색했다. 1982년에 우리나라 인터넷이 탄생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사적 하나가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당시의 망은 국내 망끼리 연결된 것이지만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방식이므로 최초의 인터넷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서울대 38동은 인터넷의 산실인데 이곳이 철거된 올해가 공교롭게도 30주년이라서 안타까움은 더 크다.

정부는 30주년 기념행사로 인터넷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초창기 멤버들도 조명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다른 분야로 옮긴 사람도 많고 몇몇은 세상을 떠났다. 유물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볼 만한 것도 남길 만한 것도 마땅치 않다. 이는 당시 상황을 기록해 남길 수 없게 되는 것뿐 아니라, 당시에 우리가 기울인 노력과 고민, 가슴이 벅차도록 품었던 신념과 열정 등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영영 미궁에 빠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나는 1980년대에 인터넷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았던 메일이나 문서를 백업하기 위해서 카트리지 테이프에 보관했으며 만약을 위해 디스켓과 디스크에도 저장해두었다. 여기에는 한국 인터넷을 주소로 등록하기 위해 세계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던 존 포스텔과 주고받았던 메일 등 초창기 인터넷의 귀중한 자료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중 많은 부분이 지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자료는 읽을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볼 수가 없다.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터넷은 수많은 세대교체를 거듭, 초창기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인터넷 사료를 보존하는 것이 초기 멤버로서 해야 할 또 하나의 임무라고 생각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홍릉 KAIST 9호관을 인터넷 박물관으로 만들자. 홍릉 KAIST 9호관은 1983년에 한국 인터넷을 세계 인터넷과 최초로 연결했던 곳이고, 이후 10여년 동안 인터넷을 진두지휘한 본부였다. 따라서 이곳을 인터넷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둘째, 흩어져 있는 인터넷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자. 지금이라도 연구개발과 산업 현장에 남아 있는 초기 인터넷 사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야 한다. 당시 멤버의 사진, 노드 컴퓨터, 비디오 테이프, 초기 메일, 초기 웹 화면 등 목록을 세분해 수집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셋째, 전자 자료를 복원하는 공공서비스를 시행하자. 과거의 전자 자료가 사장돼 잊혀지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과거의 귀중한 자료를 현대식 저장장치에 변환해 보관하는 서비스를 공공사업으로 해야 한다.

1982년에 탄생한 우리나라 인터넷은 몇 달 못 가고 중단됐다. 서울대 38동에 비가 새서 인터넷을 연결한 컴퓨터에 물이 찼기 때문이다. 이듬해 인터넷은 KAIST 9호관으로 옮겨졌고, 이곳이 야전사령부가 됐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인터넷은 그로부터 십수년 뒤 아시아 최초의 초고속인터넷으로 화려하게 진화했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 인터넷은 확고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가 됐다. 지금 인터넷 박물관을 세우자는 것은 초기 인터넷 정신이 그동안 이룬 결실의 기반이 됐던 것처럼 미래에도 우리가 비약할 수 있는 확고한 기초가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현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DTV/방송 PD hjpark9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