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업계가 통신요금 인하 압박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대선을 앞둔 각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통신요금 인하를 강행할 분위기다.
내달 단말기 자급제(블랙리스트제)를 시행키로 한 정부도 “기존 약정할인제 수준의 저가요금제를 내놓으라”며 압력을 넣었다. 이통사들은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실행하면 연간 8조원이 넘는 매출이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반론할 엄두조차 못내 속만 끓인다.
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문방위 간사)은 지난 25일 한국미래소비자포럼에서 “정부가 저소득층·차상위계층에 통신비 감면 정책을 내놨지만 허울뿐이었다”며 “설치 목적을 상실한 기본료와 가입비를 폐지하고, 카카오톡 등 무료 서비스가 일반화된 문자메시지 요금도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민주통합당의 지난 19대 총선 공약 중 통신비 경감 내용을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민주통합당 공약을 지난해 이통 3사 실적에 대입하면 8조5000억원이 넘는 매출이 단번에 사라진다. 2011년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5220만여명, 기본료 수익은 6조9000억원이다. 전체 신규가입자 수는 2051만명 수준으로 가입비로 6300억원을 벌었다. 문자 매출은 1조원 가까이로 추정된다. 민주통합당이 이 수익을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사 고위관계자는 “매출도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당 요금을 받지 않더라도 서비스 투입 비용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SK텔레콤 2조1350억원, KT 1조4400억원, LG유플러스 2857억원으로 3사를 모두 합쳐도 8조5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새누리당은 특정 비용 폐지를 내세운 민주통합당과 달리 △보조금 미혜택 소비자에 요금 인하 △이통사 간 접속료 인하에 따른 요금 경감 △LTE 서비스 무제한 데이터 적용 등을 골자로 한 통신비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업계는 “현실적이지 않거나 민주통합당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타격을 받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보조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 요금 20% 할인 공약은 내달 시행 예정인 단말기 자급제에 맞춘 방송통신위원회의 저가요금 출시 요구와 유사하다.
방통위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은 약정고객에 해당 기간 동안 요금을 깎아주는 기존 할인제도를 기본 적용하는 요금제를 원한다. SK텔레콤 `스페셜 할인` 등 이통사 약정할인제는 최대 40%까지 요금 할인을 제공한다. 방통위 안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SK텔레콤은 아직 저가요금제 인가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내달 자급제가 시행돼도 당분간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과 정부는 “통신사가 마케팅비에 쏟아 붓는 돈을 요금 인하에 투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펼친다. 지난해 이통 3사가 무선 부문에 투입한 마케팅비(광고선전비 포함)는 6조5277억원에 이른다. 방통위의 매출액 대비 마케팅비 비율 가이드라인(20%)을 한 곳도 지키지 않았다.
이통사 관계자는 “LTE 경쟁을 펼치느라 마케팅비를 지나치게 쏟아 부은 건 틀린 말이 아니다”라면서도 “마케팅은 기업 고유 영역이고 보조금 역시 체감 통신비를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반박했다.
기본료·가입비·문자료 폐지 시 이통3사 매출 변화
※가입자 수·신규가입자 수·매출은 모두 2011년 기준, 문자매출은 증권사 추정치
자료=업계 취합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