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치솟는 기름값을 잡을 목적으로 종합대책을 내놨다. `석유제품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해 기름값을 잡겠다`는 게 대책의 골자다.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가 1년간 머리를 맞대 만든 대책이다. 대책을 접한 사람들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유류세 인하와 유가 보조금 지원이 빠진 대책은 맹탕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해 초와 비교해 두바이유 기준 국제 유가는 24%나 올랐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경제적 부담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런 마당에 언제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는 시장경쟁 유도로 기름값을 내리겠다니 느긋해도 너무 느긋하다.
이번 대책으로 정유 4사가 과점해 온 유통시장에 삼성토탈이 가세한다. 연간 휘발유 소비량의 2.1%에 불과한 150만배럴을 삼성토탈이 공급한다고 해서 정부가 원하는 가격경쟁이 유발될지는 미지수다. 전국 알뜰주유소 확충 계획도 대책에 포함됐다. 이들 계획이 맞아떨어지면 리터당 최대 40원 인하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이마저도 확신이 아닌 희망사항이다. 실현된다 해도 10만원을 주유하면 2000원 정도를 아끼는 셈이다. 새 발의 피다.
정부 대책이 나온 다음 날 기획재정부는 `세계경제의 4대 에너지 이슈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유가 상승이 글로벌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고 진단하면서도 유류세 인하는 불필요한 유류 소비를 늘려 유가 상승만 초래한다는 아리송한 분석을 곁들였다. 대신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원론적 얘기만 나열했다. 의문이 든다. 유류세 인하 방법으로 기름값을 낮추면 기름 소비가 늘어나 유가 상승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정유사 가격 경쟁으로 기름값이 떨어지면 그 부메랑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궁색하다.
시민단체는 알맹이 없는 이번 대책이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 저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기업 피해를 분석했다. 조사대상은 전국 제조업체 300여곳이다. 응답기업 81.6%는 유가 상승으로 피해를 봤다.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대기업(9.4%)보다 중소기업(23.9%)에서 더 많았다. 생산비용·원료가격·제품가격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 자금난, 가격 경쟁력 저하 등이 피해 내용이다.
문제는 응답기업의 95.7%가 `유가 상승 대응책이 없다`고 답한 점이다. 유가 상승으로 허리가 휘는데도 대책이 없다는 건 기업과 산업 경쟁력 저하를 막을 대책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정부가 유류세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게 편안히 거둬들일 수 있는 연간 25조원 세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기도 싫다.
기름은 필수재다. 필수재는 가격 변화로 수요량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과거 유류세 인하 정책을 펼치며 정부도 이미 확인했던 사실 아닌가. 물론 유류세 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단기 급등에는 세금 인하가 특효약이겠지만 지금 같은 지속 상승 기조에서는 세금 인하만으로 장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 약발을 지속하려면 유류 소비 억제 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종합대책으로 제시한 석유제품 시장 경쟁 유도, 유통구조 개선이 효과를 보이려면 최소 수 개월이 걸린다. 너무 길다. 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고민하며 몇 개월을 더 허비하기에는 세계 환경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간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